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9일 인천대학교 인문대학 강의실에서 ‘그레이트 북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활발한 토의를 벌이고 있다. 인천대 제공

■ 인천대 ‘그레이트 북스’ 강좌

美세인트존스대 읽기 모델 착안
명저 300권 정해 ‘비경쟁 토의’
7년간 교양·전공 과목까지 확대

지난해 인천지역 5개 고교 참여
춘천교육청과도 협약·벤치마킹
일반 시민들 97% “수업에 만족”

인천=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

‘아름다운 것은 추하다, 추한 것은 아름답다(Fair is foul, foul is fair).’

지난 19일 인천대학교 인문대학 강의실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 1막 1장에 나오는 마녀들의 대사를 놓고 학생들의 토론 수업이 진행됐다. 3학점이 주어진 교양수업이지만 교수는 아무런 강연도 하지 않았다. 수강 신청한 20명의 학생이 각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책상에 놓고 강의실에 빙 둘러앉아 작품 속 맥베스의 선택을 둘러싸고 열띤 논쟁을 벌일 뿐이었다. 아직은 서로가 낯설 만도 한 새 학기지만 이들은 상대를 향해 거침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고전을 재해석했다.

국립 인천대가 올해로 7년째 이어오고 있는 교양강좌 ‘그레이트 북스(Great Books·GB)’는 이처럼 일반적인 강의식 수업과 차별화한 비경쟁 토의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레이트 북스는 미국 세인트존스대(SJC)의 고전 읽기 세미나 모델을 국내 교육 환경에 맞춰 적용한 고전 읽기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학교 비교과 활동으로 처음 도입해 지금은 교양 및 전공 강좌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이어 중·고등학생과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회 교육공헌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SJC는 졸업 때까지 인문·자연과학 고전 100권을 읽어야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전공 없이 모든 학생이 똑같은 학위(자유교양학사)를 받지만 이 학교 졸업생은 미국 내 법률과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한 이용화 인천대 교수(영문과)는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세상을 뒤바꿀 정도의 새로운 생각을 해낸 위대한 지성들의 책을 읽고 고민하는 과정이었다”고 당시 유학 시절을 되뇌었다. 인천대가 GB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도 이런 이 교수의 생각에 기반했다. 정보의 홍수와 과부하 속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입력하고 터치하기만 하면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지만, 주체적 사고 능력과 내면적 성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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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는 2019년에 이 같은 SJC의 토의식 독서교육을 모델로 자체 GB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러나 SJC처럼 서양 중심의 고전에만 텍스트를 한정하지 않았다. 동양과 한국 고전은 물론이고 2000년대 명저도 필독교양도서 300선에 포함했다. 2022년에는 학교 도서관에 별도로 GB센터를 설치하고 이듬해에는 SJC와 국내 대학 최초로 교육협력협약을 체결했다. 인천대의 GB 수업은 15명 내외의 학생과 2명의 튜터(교수)가 참가해 연쇄적인 질문과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가며 협업하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하고 ‘공유’하며 ‘점검’하는 과정을 갖는다. 인천대는 올해 신학기에도 고전과 명저를 텍스트로 한 5개의 GB 교양 교과목과 10개의 전공 교과목을 개설했다. 이들 강좌 모두 A∼F까지의 상대평가가 아닌 P/F 방식의 절대평가로 이뤄진다. 또 방학 기간에는 교원과 학생이 함께하는 1박 2일 GB 캠프와 함께 1회, 2시간 참여 시 마일리지(최대 60점, 3학점)가 부여되는 고전 읽기 세미나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인천지역 5개 고등학교가 인천대 GB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또 인천 미추홀도서관 등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GB 세미나도 개최했다. 당시 77회 열린 세미나에 1366명이 참가해 97.5%의 만족도를 나타냈다. 인천대 GB 프로그램은 현재 인천뿐만 아니라 강원(춘천)과 서울권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교육발전특구로 지정된 춘천시는 올해 춘천교육지원청과 협약을 맺고 지역 중·고등학교의 교과 및 비교과 과정에 GB 프로그램을 탑재할 방침이다.

윤영돈 인천대 학산도서관장은 “최근 우리 사회는 이념적 성향에 따라 극심한 사회적 분열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교육의 장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고전을 기반으로 한 협력적 토의 세미나는 동일한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상호 존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이 학교 정일영(전자공학과 3학년) 학생도 “고전을 읽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지만, 함께 토론하면서 책의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고전을 통해 다양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