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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플로우’ 19일 개봉

제각기 다른 종의 동물 교감
픽사 등 제치고 시상식 휩쓸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거대한 동상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세계를 집어삼킨 홍수가 그 높이까지 따라온다. 고양이가 물에 꼴깍 빠져 죽겠다 싶은 순간 돛단배 한 척이 눈에 띈다. 영화 ‘플로우’(19일 개봉·사진)는 이 고양이의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고양이에게 대사가 없다는 데서 여느 애니메이션과 다르다. 두 발로 걷는 캐리커처 동물이 귀여운 투로 인간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전형 아니던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감동을 끌어내는 쉬운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어렵고 낯선 길을 택했다. 대사는커녕 음성 해설도 없다. 관객이 고양이 이름도 듣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고양이는 야옹야옹하다가 가끔 ‘하악질’ 소리를 낼 뿐이다. 그런데도 감동과 여운이 짙은 영화 주인공이 되는 데 성공했다.

흘러간다는 뜻의 영화 제목대로 고양이는 멈추지 않는다. 어디,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계속하는 항해에 하나둘씩 다른 동물들이 합류한다. 고양이보다 먼저 배에 타고 있던 카피바라는 늘어지게 잠만 잔다. 여우원숭이,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뱀잡이수리 등이 한 배를 탄다.

5마리의 동물이 제각기 소리와 움직임으로 관객의 마음을 건드린다. 위험을 감지하고 커졌다가 작아지는 고양이의 눈, 멀찍이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빳빳이 서는 귀에서 두려운 감정이 고스란히 객석으로 전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적응하면서 주변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는 카피바라의 여유를 보면 부러운 느낌이 든다. 밀려나든 말든 얼굴을 들이밀며 친근감을 형성하는 골든 리트리버의 모습은 편안하다. 반짝거리는 물건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여우원숭이는 인간의 욕심을 연상시킨다. 뱀잡이수리는 처음 만난 고양이를 지켜주고 시선은 오직 정면만 고수하고 있다.

좁은 배에서 다른 종의 동물들이 영역 싸움에 빠지지 않고 공존을 이룬다. 각 생명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연출돼 있지만 이들은 ‘따로 또 같이’ 위기를 넘는다. 그 과정 자체가 아귀다툼으로 침몰하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메시지다. 애니메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아니마’(anima·생명의 숨결)다. 인간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만드는 대화를 배제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본질에 충실했다. 언어의 빈자리는 음악, 조명, 편집 등으로 채웠고 오히려 더 풍성해졌다. 이기적 인간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든, 기후변화에 따른 종말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든, 그 밖에도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다.

이 작은 영화는 주요 시상식을 말 그대로 휩쓸었다. 올해 미국 골든글로브·아카데미 등의 후보작 자리는 늘 그랬듯이 디즈니·픽사·드림웍스 등 대형 제작사 위주였다.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한 ‘플로우’는 라트비아 출신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연출·각본·작화·편집·음악 등 거의 모든 부분을 혼자서 해낸 작품이다. 제작비는 약 55억 원. 경쟁작이던 ‘인사이드 아웃 2’(약 2900억 원)의 2%가량도 안 된다. 그러나 두 시상식 트로피는 모두 ‘플로우’ 차지였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이 독립 영화에 돌아간 것은 처음이었다. 라트비아 영화 역사상에서도 최초였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