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美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前 통상교섭본부장

중국에서 러시아 분리 나선 美
1971년 소련 고립 전략 뒤집기
미·우 회담 배경에도 親러 노선

中·러 분리 성공하기 힘들 것
한국 카드는 美 제조업에 투자
잘 조율해 결정적 효과 노려야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해변에 정박한 해군 함정에서 비밀리에 만난다. 한 세대 만에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자유 진영의 두 리더는 이런 인류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새로운 세계 질서의 청사진을 그린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대서양헌장’(Atlantic Charter)으로, 전후 미국과 유럽의 서방 주도로 자유와 평화, 무역과 경제 협력 등의 주춧돌을 놓으며 유엔·나토(NATO)·가트(GATT·관세무역일반협정) 등의 모태가 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지난주 백악관에서 리얼리티 쇼처럼 전 세계에 생중계된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의 파행은 80여 년간 이어져 온 대서양헌장이 와해되고 있다는 충격을 안겨줬다. 대국의 침략에 3년여 유린당하고 있는 약소국의 지도자는 미국의 지원에 대한 대가로 일부 광물자원의 이익을 내주되 안전보장 없이는 휴전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공개적 정상 간 설전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명확히 한 것은 누가 침략자인지 피해자인지보다는 ‘딜’ 성사가 우선이라는 것, 상대가 ‘카드’가 있는지 여부였다.

결국, 정상외교도 사람이 하다 보니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트럼프는 1기 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통화를 하면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 원조를 지원해 주겠다고 발언한 게 유출돼 결국 하원에서 첫 번째 탄핵을 당했던 악연이 있다. 젤렌스키도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유화적 제스처를 하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처칠은 그 어느 연인도 자신이 루스벨트의 변덕을 하나하나 면밀히 공부했던 만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백악관을 다녀간 일본, 이스라엘, 인도, 프랑스, 영국 정상이 나름대로 아부의 기술을 연마했던 것도 더 큰 대의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특히, 일본은 트럼프에 대한 철저한 사전 분석과 연습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에 드러난 트럼프의 명백한 친러시아 노선의 배경으로 많은 워싱턴의 전문가는 중국을 꼽는다. 대서양헌장이 만들어졌던 시점에 미국은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약 25%로 쪼그라들었다. 한정된 자원을 유럽이나 중동에 쏟아붓는 것은 낭비이니 빨리 이 전쟁들을 끝내고 중국 대응에 진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역(逆)키신저’(reverse Kissinger) 전략이란 말이 나온다. 미·소 냉전이 절정이던 1971년 헨리 키신저가 중국을 극비 방문하면서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소련과 중국을 분열시키려던 것의 역전략이라는 것이다. 즉,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무제한적 파트너십’을 맺는 상황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품으면서 중·러를 분열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4년을 넘어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데 근본적 이해가 일치하는 중·러가 미국의 뜻대로 분열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이번 미·우 정상회담을 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이 중국을 존재 차원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특히 한국 기업들의 투자는 중요한 ‘카드’가 될 것이다. 이는 미국과 우리의 이익이 일치하는 부분이다. 중국과의 치열한 경합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문이 점차 좁아지는 상황에서, 제조업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미국에서의 문은 점차로 넓어지고 있다. 중국과도 협력의 끈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과 협력의 모멘텀은 태평양 건너로 움직이는 듯하다.

트럼프의 ‘투자하거나, 아니면 관세를 맞거나’ 원칙에 따라 소프트뱅크, 스타게이트, 애플, TSMC 등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미국 정부의 칩스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호응해 대규모 투자를 했던 한국 기업들에는 부담이 되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 필요로 하는 주요 업종으로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민관의 사전 조율 아래 모아서 결정적인 시점에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터뜨림으로써 이 양적인 열위를 만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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