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랑의달팽이 소울리더 15호 헌액식에서 권준하(오른쪽)·조강순 부부가 김민자(가운데) 사랑의달팽이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랑의달팽이 제공

■ ‘사랑의달팽이’고액후원 15호 권준하·조강순 부부

“처음 펀드기부 타진했더니
손실 우려해 선뜻 안받아줘

재원 마르지 않는게 큰 장점
사후에도 나눔 지속돼 갈 것”

“비현금성 자산을 활용한 다양한 기부가 활성화되고, 유산기부도 많이 일어나 우리 사회가 보다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복지단체 사랑의달팽이(회장 김민자)에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펀드를 기부한 권준하(81) 신익산화물터미널 대표는 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달팽이는 권 대표와 부인 조강순(80) 씨를 고액 후원자 클럽인 ‘소울리더’ 15호에 등재하는 헌액식을 지난달 17일 열고 펀드 기부를 받았다. 부부가 소유한 5억 원 규모 펀드의 수익자로 사랑의달팽이가 지정돼 매년 발생하는 운용수익을 기부금으로 받고, 부부 상속 시에 펀드 명의가 사랑의달팽이로 이전된다.

권 대표는 몇 년 전부터 보청기를 착용하면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어려움을 알게 돼 후원을 결정했다. 사랑의달팽이는 기부금을 청각장애인들의 인공와우 수술과 보청기 지원 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다.

부부의 펀드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3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기부하면서 국내 첫 펀드 기부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까지 두 사람의 모교인 서울대와 숙명여대를 비롯해 사랑의열매, 굿네이버스, 연탄은행 등에 총 90억 원 상당의 펀드를 기부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선행 공적으로 지난해 ‘제13기 국민추천포상’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사업을 하며 펀드 투자로 큰 자산을 일궜다. 2013년 사랑의열매에 각각 1억 원씩 기부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부부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기부를 위해 찾아간 공익기관, 장학재단 등에서 돈을 다 은행에 넣어두고 있는 것을 보고 적은 이자로는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싶어 펀드 기부를 고안하게 됐다.

“30년 전부터 우량 펀드에 투자해오고 있는데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행 이자보다도 훨씬 낫고 이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는 것이 없더군요. 수익금이 꾸준히 기부되면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복지 재원이 계속 창출되는 것이 펀드 기부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펀드로 기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데다 손실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것이지요. ‘원금 보장을 해줄 테니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8∼9년의 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기부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기부한 펀드들의 성적이 아주 좋게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대에 기부한 것은 2년 만에 수익률이 60% 이상 됐을 정도예요. 100여 개 펀드를 가지고 있는데 매일 연구하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제 사후에 명의가 이전돼도 오래도록 잘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국내 펀드 기부 문화를 개척한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기부처를 찾아 계속 나눔을 이어갈 생각이다. “인생에서 잘한 일 두 가지가 펀드 투자와 기부입니다. 제 매형이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인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지요.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부를 한다’고 말했을 때 처음엔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작은 것에도 감사함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도 금액을 떠나 일단 시작해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축복이 찾아옵니다. 나만 알고 느끼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에요.”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