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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제멋대로 한다
이토 아사 지음│김영현 옮김│다다서재

일본에서 손꼽히는 인문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토 아사는 몇몇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실험에 동참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21년간 에이스로 활약했던 투수 구와타 마스미에게 “똑같은 자세로 공을 30번 던져달라”고 한 뒤 그의 손가락 움직임, 투구 동작을 정밀하게 촬영해 비교해본 것이다. 구와타는 ‘교과서’ 같은 자세로 30개의 공을 포수의 미트 한가운데에 정확히 꽂아넣었다. 누가 봐도 한결같고 똑같은 피칭이었다. 하지만 영상으로 밝혀진 결과는 전혀 달랐다. 구와타는 똑같이 던진다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 투구와 30번째 투구의 공을 놓는 지점이 거의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났다. 놀라운 것은 이 정도로 공을 던지는 위치가 매번 달랐는데도 제구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머릿속 이미지와 실제 몸동작은 달랐던 셈이다.

피아니스트의 숨은 연주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연구에서는 ‘외골격’이라는 기구의 효과가 테스트에 올랐다. 외골격은 로봇 장갑처럼 생긴 기구다. 전문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움직임에 대한 계측 데이터가 들어 있다. 따라서 초보자가 이 외골격을 착용하면 전문 피아니스트처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 이 외골격은 60명에게 테스트를 거쳤는데, 난도가 높아 할 수 없었던 연주 기법을 외골격으로 체험해본 사람들은 외골격을 벗은 뒤에도 손가락이 이전과 달리 쉽게 움직이는 경험을 했다. 의식을 앞질러 몸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실험은 인간의 몸이 가진 의외성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론 몸의 움직임이 뇌의 지배를 받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우리의 몸은 의식과 상관없이 움직이기도 한다. 몸은 때론 머릿속의 이미지와 다르게 가동되며, 뇌가 이미지를 그리지 못하는 경우엔 몸이 먼저 움직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본래 장애와 질병을 주로 연구하던 저자는 과학자들의 실험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며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 몸의 숨은 가능성을 탐구한다. 저자는 ‘할 수 있다=뛰어나다, 할 수 없다=열등하다’로 치부되는 이분법적 사회 인식과 능력주의에 의문을 던진다. 대신 몸의 관점에서 ‘할 수 있다’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인간이 기술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역설적이게도 능력주의로부터 ‘할 수 있음’을 되찾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255쪽, 1만7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