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근 문화일보를 찾은 소설가 예소연은 근래 출간한 장편소설과 소설집,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매만지며 “모아놓고 보니 열심히 쓴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문호남 기자

■ ‘그 개와 혁명’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예소연 작가

암으로 죽은 ‘586운동권’ 아빠
‘페미’딸이 치르는 장례 이야기
등단 4년만에 ‘파격적인 수상’

“인간, 삶 속의 고통이유 찾지만
결국‘잘못한건 없다’결론 도달
‘살아야한다’ 믿음 전하고싶어”

“저는 과거를 되새김질하는 사람이라서 가혹하도록 집요하게 돌아보는 소설이 인생을 비관적으로 그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생각이 적기에 수상 이후의 삶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아요.”

등단 4년 만에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가 예소연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만남에서 부담감을 묻자 인생관과 소설론을 연결지어 답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는 추억으로 인한 흐뭇함보다 후회가 더 많은 법. 예 작가의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문학동네)에 실린 연작 성격의 세 단편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속 주인공 ‘희조’ 또한 각각 과거 중학생, 고등학생, 20대 초반 시절의 후회를 어루만진다. 결국 과거를 되짚는 수차례의 시도는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인생이 잘못된 건지.’ 그리고 이내 알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은 없었다.’

“사람들의 무수한 열망과 갈망이 각각의 방향을 가리킨다는 게 옳고 그른 일은 아니에요. 우리는 그 과정에서 훼손되고 오염되기도 하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발생하는 불행. 이와 같은 작가의 문제의식은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그 개와 혁명’(다산책방)에서도 계속된다. 20대 페미니스트인 딸 ‘수민’과 586 운동권 세대인 아빠 ‘태수’ 모두 세상을 힘껏 살아가지만 삶은 녹록지 않다. 심지어 태수가 암에 걸려 삶을 잃어가고, 수민은 아빠를 빼앗기는 동안에도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오래도록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가 잘못한 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냥 적당히 돈 없고 적당히 뭘 모른 채 살아왔을 뿐’이라며 평범한 삶을 내보인다.

이렇듯 삶 속 고통의 기원을 밝혀내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평범한 일상 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고통이 삶을 일순간 파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망가지는 줄도 모른 채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이는 언제나 듣는 사람을 향한다. 이때마다 들어주는 사람들의 대답은 이해한다는 것. 그러나 정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예 작가는 “관계란 말로 유지된다”며 “말로밖에 다른 사람을 알 수 없는데 말이란 언제나 오해를 일으키니 결국 관계 자체가 오해로 구성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고통을 지닌 사람들이 다시 한 번 관계의 망가짐을 경험하고 재차 고통받으며 서로를 떠나게 된다.

반복되고 심화하는 불행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예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일지언정 삶을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그런 믿음은 어디에서 생겨날 수 있을까. 그의 신간 장편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현대문학)에서 그 답을 어렴풋이 유추해볼 수 있다. 대학교 친구인 ‘혜란’과 ‘동’은 또 다른 친구 ‘석’이 어느 날 사라지자 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교차되는 기억을 더듬으며 오랫동안 석의 마음속에는 배의 침몰 사고, 거리의 압사 사고 등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석이 오래전 해외봉사를 갔던 캄보디아의 압사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에 부채감을 가진 채 현장으로 향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친구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은 혜란과 동 또한 석이 느끼는 상실의 감각을 쉽게 넘기고 있었다는 점을 느끼는 과정이다. 즉 계속되는 삶으로 인한 고통은 타인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그때 내 삶 속 고통에서 타인의 삶을 굳이 발견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그 개와 혁명’ 속 수민이 태수의 장례식장에서 ‘개판’을 벌여 ‘혁명’을 일으키는 동력 또한 아빠를 향한 사랑이다. 예 작가가 이상문학상 수상 소감을 통해 “혐오와 미움이 도사리는 세상을 사랑으로 부수고 싶다”고 밝힌 것에는 이와 같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작가가 1990년대생 최초로 이상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으로 세대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혁명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살아온 것에 비해 많은 이야기를 썼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조각의 기억조차 놓치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본다면 서로를 살리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