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설치 작품 ‘암세포 변환기’(왼쪽)와 ‘리미널’. 리움미술관 제공

■ 올해 첫 기획전시 잇단 개막

피에르 위그 개인전 ‘리미널’
재단 창립60주년 소장품展도

얼굴 없는 인간과 암세포가 서식하는 전시장? 26일 개막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올해 첫 전시는 다소 어둡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프랑스 현대 미술가 피에르 위그(63)의 개인전 ‘리미널’(Liminal).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라는 뜻으로, 제목도 쉽지 않다. 하지만 호기심 충만한 미술 애호가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위그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풍경을 탐구해 온 작가라는 걸 상기하며 입장해 보자. 전시 초입에서 전시 제목과 같은 작품 ‘리미널’과 ‘암세포 변환기’를 마주하고 나면, 어느새 위그의 우주에 성큼 발을 들여놓고 싶을 테니까.

‘리미널’은 얼굴 없는 인간 형상을 하고 있다. 형상의 움직임과 시선은 센서가 포착한 환경 조건과 인공 신경조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되고 전시 기간 형상은 외부 데이터를 학습하고 쌓아간다. ‘암세포 변환기’는 실제 암세포가 서식하고 지속해서 분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위그의 제작팀이 삼성서울병원과 협력해 완성한 작품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변화를 기록하는 현미경 이미지 데이터는 ‘U움벨트-안리’라는 작품으로 송출된다. 또 영상 작업 ‘카마타’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인간 해골을 중심으로 기계가 신비로운 의식을 수행한다. 영상 속 이미지는 전시 공간 내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편집된다.

위그는 인공지능(AI) 기술이나 생명체 등을 이용해 영상과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을 결합한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베니스의 유명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열린 개인전은 당시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할 전시로 꼽히며 회자했다.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에는 베니스 전시작 중 ‘리미널’과 ‘이디엄’, ‘카마타’를 비롯해 빛과 안개 등으로 구성된 ‘오프스프링’,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폐허가 된 지역에서 찍은 영상 ‘휴먼 마스크’ 등 최근 10년간의 작품 총 12점이 소개된다.

이와 함께, 미술관은 3년 만에 소장품전을 연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한 전시로,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9년 만에 공개돼 주목된다. 또한, 최근 새로 수집한 작품과 함께 처음 수장고 밖을 나오는 27점을 포함해 35명 작가 44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관람객을 반긴다. ‘칼레의 시민’은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에 점령당한 프랑스 항구 도시 칼레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건 시민 영웅 6인을 기리기 위해 제작됐는데, 리움 소장품은 단 12점만 제작된 오리지널 에디션 중 마지막 작품이다. ‘칼레의 시민’ 옆에는 마크 로스코와 장욱진의 작품이 나란히 배치됐다. 그 조화로움이 주는 감흥이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 밖에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솔 르윗과 칼 안드레, 팝아트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의 작품 27점은 처음 공개된다. 또 독일 개념미술 작가 한네 다보벤, 미국 추상 조각가 루이즈 네벨슨 등 최근 수집한 작품도 선보인다. 피에르 위그 전은 7월 6일까지, 소장품전은 내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두 전시 모두 유료(각 1만6000원·1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