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촌놈이 서울서 만나 40년 詩 우정 나누며 문학 위기 헤쳐나와

이미지 크게보기 1986년 11월 24일자 한 일간지에 성민엽 평론가가 ‘세상읽기’ 동인 소개의 글을 발표한 것을 보며 동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재길, 이승하, 윤승천, 박세현, 오태환.

■ 자랑합니다 - 동인 ‘세상읽기’와 시인 윤승천 <상>

두 촌놈이 있었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청주에 있는 충북대 국문학과로 유학 간 윤승천은 58년생 개띠였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자란 이승하는 중앙대 문창과를 나왔는데 60년생 쥐띠였다.

1984년 같은 해에 두 사람은 시인이 되었다. 이승하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윤승천은 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문예중앙’ 신인상에 투고해 당선됨으로써 시인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해 대학 4년생 윤승천은 2학기가 시작되면서 보건신문사 기자로 취직했다. 여름방학 중에 입사시험을 쳤고 9월 8일부터 출근했다. 당시에는 취업한 재학생에게는 학교 측의 배려가 있었다. 이승하는 이듬해 대학원에 진학해 다시 학생이 되었다. 시인이 되자 문예지에서 청탁이 쇄도한다? 천만의 말씀. 주요 문예지가 제5공화국의 언론 통폐합 조처로 다 문을 닫아 문인들은 부정기 간행물(무크지)을 통해 작품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윤승천은 신문사 기자답게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기획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동인지를 만들 생각으로 동인 포섭(?)에 나섰으니, 그의 노력으로 그물망에 총 4명의 시인이 포획되었다. 198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박세현은 한양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1984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한꺼번에 당선된 오태환은 고교 교사였다. 1985년 ‘학원’ 신인상으로 등단한 원재길은 연세대 사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 국문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5명이 모였다. 박세현 시인의 본명은 박남철이다. 선배 시인 박남철(朴南喆)과 한자가 달라 朴南澈로 썼더니 직장인 학교로 찾아와 협박(?), 동인지 1집과 2집에서의 이름이 달라지는 재미있는 사건도 있었다.

동인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제일 연장자인 박세현 시인이 “지금 이 난망한 시국에 우리라도 세상을 정확하게 읽고 시에 반영하면 어떠냐?”고 ‘세상읽기’라는 조금 엉뚱한 동인명을 제안했고 우리는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통행금지제도도 없어졌겠다 신촌이나 종로에서 만나면 다들 술을 두주불사로 마셨으니, 참 젊긴 젊을 때였다. 1년 남짓 우정을 술로 다진 뒤인 1986년 10월에 동인지 제1집을, 1987년 4월에 제2집을 냈다. 모두 장석주 시인이 운영하던 청하출판사에서 출간했는데 이도 윤승천 시인이 주선했다. 청하출판사는 윤승천 시인의 첫 시집 ‘안 읽히는 시를 위하여’를 펴낸 출판사로, 이 시집은 출간 1년 동안 시집으로서는 드물게 9쇄를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다. 동인지 제2집의 제목은 ‘오늘의 빵에 관하여’였다. 20대 후반, 다들 장가도 가야 했고 먹고사는 게 절박했던 때였다. 박세현 동인이 초를 잡고 동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창간사가 아주 비장했다.

“시에 대한 새로운 정의 내지 시정신의 새로운 성찰과 정립을 기도해야 하는 시의 위기의 시대는 혹 아닐까. 상황은 어떠한가. 세계는 지금 지나치게 상처받고 부조리하며 준열한 도덕적 전망과 역사의식, 자기 정직성이 궁핍한 이들로 들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는 지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망가져 있어서 차라리 멀찌감치 물러나서 바라보는 게 최선인 그런 지경이 아닐까.”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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