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콘클라베’는 다음 달 3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각본·편집·음악·의상·미술상과 남우·여우주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디스테이션 제공

■ 내달 5일 개봉 ‘콘클라베’

교황 선출 나선 추기경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 위중해 관심

자유주의·복고주의·유색인종
비리·추문 담은 정치 스릴러물

세계 각국 흔들리는 선거제도
현실 정치에 고민거리 던져줘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달라고 기도합니다.”

교황이 선종하자, 직무대리가 예정에 없던 연설을 한다. 그는 차기 교황의 선출 절차에 대한 선거관리위원장 격의 인물. 차기 교황을 뽑는 선거권이 있는 추기경 118명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절대 믿음의 교회에서 ‘의심’이라니, 그 맥락을 떠나 논란을 자초했다. 그런데 영화 ‘콘클라베’(3월 5일 개봉)는 그의 연설에 빈틈없는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콘클라베는 올해로 제도화된 지 750년째를 맞는 교황 선출제다. 어원은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이라고 번역되는 라틴어 ‘쿰 클라비’(cum clavis). 교황 자리가 공석이 되기 전날 기준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에게 참석권 및 선거권이 있다. 투표의 3분의 2 이상을 얻은 자가 나오고 그가 교황직을 수락할 때까지,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투표를 거듭한다. 추기경들은 교황을 뽑으러 왔지만 교황이 될 수도 있다. 영화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현실 정치판의 문법으로 콘클라베를 재구성한 것이다.

‘의심 연설’의 주인공은 토마스 로렌스(레이프 파인스) 추기경이다. 콘클라베 시작에 앞서, 다양한 인종·국적·성별의 신도들을 품어야 하는 교회에 있어 섣부른 확신은 금물임을 강조한 것이 연설의 취지였다. 확신이 낳는 편견, 선입견은 교회의 적이라는 의미다. 다만 선거관리자가 굳이 왜 그런 연설을 해야 했을까. 관리자 직분을 넘어선 욕망을 품은 건 아닌지 되레 의심을 산다. 로렌스의 연설을 신호탄으로, 이 영화는 “추기경이라면 누구나 교황이 되기를 원한다”며 본격 정치 스릴러물로 내달린다.

이윽고 의심으로 정신 무장한 유력 추기경들의 선거 격전이 펼쳐진다. 로렌스는 ‘자유주의자’를 자칭하는 미국인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추기경을 지지한다. 벨리니 세력은 전임 교황의 다양성 우선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노선이다. 그 대척점에 있는 유력 후보가 이탈리아인 조프레도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 추기경이다. 테데스코는 이슬람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는 복고주의자다. 나이지리아인 조슈아 아데예미(루시언 므사마티) 추기경, 캐나다인 조지프 트랑블레(존 리스고) 등까지 가세한 4파전 구도다.

일부 후보의 비리와 추문이 들춰진다. 관객은 로렌스의 시선을 따라 그 과정을 함께 추적한다. 몇몇은 수치심을 느끼고 후보군에서 자연스럽게 탈락한다. 남은 추기경들은 1표씩 향방을 계산하며 헤쳐 모이기를 반복한다. 명배우들의 실감 나는 성직자(정치인) 연기가 120분 러닝 타임을 금세 채운다.

현실 정치와 닮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현실 정치인은 의혹들로 범벅이 돼도 탈락하지 않는다. 의혹 제기는 상대편의 음모로 악마화한다. 지지자는 교주의 언어를 쓰는 그 정치인을 의심하는 법이 결코 없다. 세계 각국에서 선거제가 흔들리고 있는 오늘날, 가톨릭의 ‘밀실 선거제’를 다룬 이 영화는 묵직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추기경 누구도 콘클라베를 흔드는 짓은 상상조차 못한다.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데 따라 보장받는 기득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영화는 암시한다.

이 작품의 결말에는 소설가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원작대로 반전이 튀어나온다. 혼탁한 콘클라베 정치판의 메기 역할을 하는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즈) 추기경은 가톨릭 체제를 위협할 만한 비밀을 품고 있다. 그 반전의 비밀을 직면한 로렌스의 표정은 신에 대한 의심이 엄습한 듯하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