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매번 두렵고, 그런데 신나기도 하는 복합적 마음.”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8번째 장편 영화 ‘미키17’의 개봉을 앞둔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28일 개봉 ‘미키17’ 봉준호

50代 봉준호로서의 첫 작품
젊은 인물 중심 스토리 전개
17·18번째 미키 대면 장면
아이 → 어른 되는 과정 상징

“기존보다 덜 가혹하게 접근”

“미키는 제 아들과 같은 또래의 인물이죠. 그런데 가혹한 상황에서도, 결코 파괴되지 않습니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처럼 흐뭇한 표정이었다. 봉준호(사진) 감독은 자신의 신작 ‘미키17’의 주인공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를 마음속 깊이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는 28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봉 감독을 만났다.

봉 감독의 말처럼, 미키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 꿋꿋한 캐릭터다. 영화의 배경인 2054년의 우주는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비정하기 짝이 없다. 죽음이 노동처럼 일상화돼 있고, 미키도 16번씩이나 죽고 나서야 17번째 삶을 맞이했다. 그러나 가혹한 상황에서도 미약한 성장은 계속된다. 17번째와 18번째 미키가 마주치는 장면은 그 성장을 암시하는 영화적 표현이다. 미키18은 미키17을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듯 경멸의 시선으로 보다가도 보호한다. 봉 감독은 “18세는 아이가 어른이 되는 나이”라며 “17, 18로 숫자를 설정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의 원작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이다. 봉 감독의 미키는 원작보다 10차례나 더 많이 죽어본 인물로 각색됐다. 지적인 역사학자였던 신상도 청년 채무자로 바뀌었다. 빚에 쫓기다 못해 이제 죽음에 쫓기는 미키는 권태와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작에서 보았던 봉 감독 특유의 위트와 블랙 코미디가 캐릭터 속에 여전하다. 그러나 미키는 좀 다른 것 같다.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대우를 받고도 실실 웃는 미키는 그 굴레를 딛고 자존감을 찾습니다.” 봉 감독은 미키를 응원하듯 온기를 불어넣었다. 권태와 공포 속에서도 나샤(나오미 애키)와의 사랑을 꽃피우는 인물로 그렸다.

특히 나샤는 남녀 간의 로맨스를 사실상 처음 다룬 봉 감독 입장에선 중요한 인물이다. 봉 감독은 “미키가 파괴되지 않은 것은 나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단순한 애인 역할은 결코 아니다. 미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고, 작품 속 독재와도 맞서 싸우는 나샤가 있기에 감독으로서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여러모로 ‘기생충’(2019)과 ‘설국열차’(2013) 등 전작들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폭설과 혹한의 미개척 행성이 배경인데도 영화에는 따뜻함이 감돈다. 봉 감독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한 번 정도는 영화 캐릭터들에게 덜 가혹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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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은 봉 감독이 50대로 접어들어 처음 만든 작품이다. 40대 후반을 ‘기생충’의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으로 보낸 그는, 지난 2021년 9월 ‘미키17’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그의 나이 52세 때이고, 아들 봉효민 감독이 20대 중반에 접어들며 스스로 영화계 경력을 쌓던 시기였다. 봉 감독이 아들과 같은 청년 세대를 신작 소재로 삼은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봉 감독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의도적으로 부모와 청년 세대에 집중했다”고도 했다. 미키, 나샤뿐 아니라 티모(스티븐 연), 카이(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 등 젊은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들 위를 독재 정치로 군림한 마샬 부부(마크 러팔로·토니 콜렛)가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사사건건 양측의 대립으로 내달리는 이 작품의 결말은 부모 세대의 우스꽝스러운 퇴장이다. 봉 감독은 “좋은 부모 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며 넉살을 피웠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