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15년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행사 중 참가자들이 일본 시즈오카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맨 앞에 붉은색 정사 복장을 한 이가 선상규 회장. 한국체육진흥회 제공

■ 내달 10번째 ‘한·일 우정걷기’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

하루 30㎞씩 옛길 따라 걸어
2007년부터 1만4921명 참가

“대부분 고령자… 청년들 절실
한·일 우정 더 돈독해졌으면”

“일본과는 역사의 굴레 속에 악연도 있었지만, 조선통신사를 통한 선연도 있었지요.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誠信交隣·정성과 믿음으로 이웃 나라와 사귄다)’ 정신을 되살려 악연을 풀어내고 후세대는 서로 돕고 상생하는 우호적인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를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선상규(77) 한국체육진흥회 회장은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동안 조선이 일본에 보낸 외교사절단이다. 4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렬로 평화적 외교와 문화적 교류의 상징이었다. 2017년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선 회장은 2007년부터 조선통신사가 걸었던 옛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행사를 일본걷기협회와 함께 격년으로 개최하고 있다. 내달 9일 열 번째 행사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한국인 33명, 일본인 29명이 참가합니다. 서울에서 같이 출발해 부산까지 걷고, 배를 타고 쓰시마(對馬) 섬으로 가서 오사카로 이동, 오사카부터는 다시 도보로 도쿄에 도착합니다. 53일간 총 1158㎞를 걷는 대장정으로 하루에 30㎞ 정도 걷습니다.”

요즘 매일 10㎞ 이상씩 걸으며 훈련한다는 그는 왼쪽 다리에 철심이 박혀있다. 젊은 시절 다리를 절단할 뻔한 큰 교통사고를 당한 후 걷기에 빠져들었고, 1984년 민간 생활체육 단체인 한국체육진흥회를 설립해 우리나라에 국제걷기대회를 처음 도입하는 등 40여 년 동안 걷기운동 확산에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선 회장이 ‘한·일 우정 걷기’ 행사를 시작한 것은 쓰시마에 갔다가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들이 어떤 경로로 일본까지 갔는지 궁금증이 생겼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지역에서도 그 사실을 잘 모르던 때였지요. 김인겸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해행총재(海行摠載)’ 같은 문헌들을 참고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여 회를 왔다 갔다 하며 그 길을 찾는 데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을 기념해 2007년 행사를 시작했고, 9회까지 전체 참가자는 1만4921명, 전 구간 완보자는 528명에 이른다. 참가자 평균 연령이 70세 정도로 여성이 절반 이상이며 최고령은 92세 남성이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더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더군요. 600만 원 정도 되는 비용도 부담이지요. 무엇보다 의지가 있어야 되는 일입니다. 대학생들이 이 길을 걸으며 우리나라가 일본에 우수한 문물을 전해줬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취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정부 지원이 좀 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그는 이러한 민간 교류가 많아질수록 정치·외교적으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일 수교 60주년에 열리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그 마음이 더 간절하다. “400여 년 전 조선통신사를 통해 평화를 유지했던 역사를 재현하며 양국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데 일조했으면 하지요. 조선통신사는 총 12차례 파견됐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12번까지는 꼭 마치고 싶습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