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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화재, 규제 피하려
삼성전자 주식 500만주 매각
자사주 소각 등 밸류업 정책이
오히려 주가하락 이끄는 ‘역설’
유사한 사례 이어질 가능성 커

기업 밸류업을 위해 자사주 소각 등의 조치를 하면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원칙’에 따라 계열 금융회사가 보유한 해당 기업 주식을 강제 매각해야 하는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밸류업 정책과 금산분리 원칙이 이해 상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금산분리 규제 위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 약 2750억 원을 매각하면서 삼성전자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전장 대비 1.43%(900원) 하락한 5만4800원으로 시작해 오전 11시 현재 0.71% 떨어진 5만53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 하락은 장 시작 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대규모 대량매매(블록딜)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이날 공시를 통해 삼성전자 주식 425만2305주(2337억7472만 원), 74만3104주(408억5289만 원)를 각각 매각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율은 8.51%에서 8.44%, 삼성화재는 1.48%로 일제히 낮아졌다. 삼성 금융 계열사들의 삼성전자 지분매각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경우 삼성전자 발행 주식 수가 줄고 상대적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보유 지분율은 올라가 금산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10% 이내 지분 보유’ 규정을 위반하게 된다. 증권업권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이 종전 10%에서 10.8%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매각으로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종전 9.92%로 낮아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삼성전자 사례를 두고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 핵심으로 꼽히는 자사주 소각이 금산분리 원칙과 충돌하면서 오히려 주가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구분되는 기업은 2023년 말 기준 총 88곳으로 이 중 45곳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았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들 기업 중 다수가 자사주 소각 등에 나설 때 이번과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연구·개발(R&D)도 밸류업 정책 중 하나로 강조하고 있으나 기업들은 배당 혹은 자사주 소각에 매몰돼 있는 듯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병남 기자 fellsic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