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정치부 차장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보여주는 변신은 화려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친(親)기업 성장 담론’을 제시했고, 지난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성장’이 바로 더 나은 세상의 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A부터 F까지 알파벳 철자를 머리글자로 한 성장전략도 제시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Bio), 문화 콘텐츠(Contents & Culture), 방위산업(Defense), 에너지(Energy), 제조업 부활(Factory)이다. 여기에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안보에서도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조기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행보로 풀이된다.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선제적으로 던지는 것이다. 이 대표의 구애가 중도층에 먹힐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으나 다른 주자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성장률 제고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주장하며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포기할 수 있다고 하는 등 정파적 지도자를 벗어나 국가 지도자라는 인식을 주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유류세 인하를 주장한 후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결정하는 등 그가 던진 민생정책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도 확인됐다.

이 대표는 대선을 향한 스타트를 했지만, 여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치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못하면서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미래 비전 제시는 언감생심이다. 사실상 여당의 유일한 전략은 ‘이재명은 안 된다’이다.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인 진정성 문제를 걸고넘어지면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를 적용하는 것을 두고 이 대표가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겉과 속이 다른 수박, 그것도 미래를 위한 씨앗을 쏙 빼놓은 ‘씨 없는 수박’이 바로 이재명 우클릭의 실체”라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당의 전략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정권 교체〉민주당 지지율〉이재명 선호도 순이다.

문제는 ‘반(反)이재명’에 기대어 대선을 치를 수 있느냐에 있다. 비상계엄을 거치면서 보수가 진보에 비교 우위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은 거의 사라졌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성장을 보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발표했다.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전망치(2.0%)와 비교하면 0.4%포인트나 하향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계엄이 가져온 후폭풍이다. 유권자가 보수 진영에 ‘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지도 불투명하다. 계엄보다 불안정한 정치행위는 없다. 법치주의도 이제 강조하기 어렵다. 서울서부지법 담장을 넘어 사법부를 습격한 것은 이 대표 지지자가 아니다. 국민의힘에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단언해도 과하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이 정권 재창출을 꿈꾼다면 자격과 능력을 유권자에게 입증해야 한다. ‘반이재명’은 선거 전술이지, 국정 운영과는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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