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숨 작가가 11일 문화일보를 찾아 인터뷰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김 작가는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전 장애인 복지관에서 근무하며 소설 창작을 병행했다. 문호남 기자

■ 김숨, 시각장애인 얘기 담은 연작소설 ‘무지개 눈’ 펴내

저시력·전맹 등 5명 인터뷰
그들의 성장·노동·사랑 담아
“안보이는데 어찌 아냐 물으니
그게 좋아서 있는 줄 안다 해”

현실적이고도 감각적인 문체
시각장애인의 세계 간접경험

이미지 크게보기 시각장애인의 말을 받아적은 수첩은 ‘무지개 눈’의 창작노트가 됐다. 문호남 기자

“이 책은 점자로 적히지 않아서 시각장애인이 곧바로 읽을 수 없어요.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소설입니다.”

연작소설 ‘무지개 눈’(민음사)을 펴낸 소설가 김숨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쓴 다섯 단편이 연작으로 묶였다.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의 사랑과 결혼, 출산과 육아, 성장과 노동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진하게 녹아있기에 모두가 장애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김 작가는 그들과 함께 남산을 걷고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감각을 체험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천천히 스며들어왔고, 어느 순간 그들이 말할 때면 마치 제가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맨 앞에 실린 단편 ‘오늘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의 주인공은 태어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맹(全盲)’이다. 그러나 곰돌이의 눈동자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며 자신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물을 만지는 순간 물이 보이며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 소리와 풀내음으로 비로소 나무까지 본다.

나아가 그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무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집요하게 물었어요. 거대한 무엇이 느껴지는데 그게 좋으니 나무가 있는 줄 안다고 하셨죠. 보는 사람에게 없는 감각이죠.”

그러나 그런 주인공이 ‘만져도 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있어요. 만져보는 것과 보는 것은 달라요’라고 고백하는 순간이 있다. 딸과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을 때. 김 작가는 “시각장애인들의 ‘본다’는 표현은 ‘마음을 내어준다’, 즉 ‘사랑한다’라는 뜻”이라고 재정의했다. 모든 감각을 끌어모아 사랑하고 싶을 때면, 비어 있는 감각인 시각이 더욱 저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실린 ‘파도를 만지는 남자’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꿈을 꾼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주인공은 ‘목소리로 보인다’고 일러준다. 책의 제목이 된 동명의 단편 ‘무지개 눈’은 다양한 시각장애인이 모인 특수학급의 풍경을 그린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주인공이 느끼는 두려움과 그런 주인공이 오히려 부럽기만 한 전맹 시각장애인의 욕망을 교차해 드러낸다. ‘무지개 눈’은 저시력자의 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내가 보고 있던 무지개가 하늘에 뜬 무지개가 아니라는 걸, 내 흔들리는 눈동자에 뜬 무지개라는 걸 나는 도에게 말하지 않았다.… 눈동자가 진동 속에 있는 데다 사시여서, 햇빛이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과 반사가 일어나며 무지개가 뜨는 걸 거다.’ 이처럼 책은 저시력부터 전맹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그리며 납작한 ‘시각장애’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시각장애인의 감각으로 다시 그리며 미지의 세계에 독자를 참여시킨다.

소설은 장애인을 향한 차별도 가감 없이 그린다. 주인공들은 장애로 인해 부모에게 외면받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지며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배제당한다. 장애를 가지고 오랜 시간 살아온 주인공들은 뜨거운 울분 대신 덤덤히 말을 뱉어낸다. 김 작가는 인터뷰 동안 비장애인이라는 말 대신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 장애인일 수 있어요. 더 많이 이해한다면 타인을 덜 상처 주고, 덜 슬프게 할 수 있어요.”

김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발언을 300개 넘는 각주로 인용했던 소설 ‘한 명’(2016·현대문학)을 시작으로 오키나와에서의 조선인 참살을 다룬 ‘오키나와 스파이’(2024·모요사)에 이르며 체험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온몸으로 새롭게 썼다. ‘듣기’의 힘에 뿌리내린 그의 소설은 가늠조차 어려운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그리며 나아가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자리는 가장 낮은 곳, 시끄러운 난전이에요. 제게 눈과 귀가 주어졌다면 그곳을 보고 듣지 못한 사람을 위해 기록하는 일에 써야 해요. 죽을 때까지 쓰고 싶고, 지금 제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쓸게요.”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