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희 경제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취임 후 아직 한·미 간의 현안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의 1기 당선 과정 및 재임 시절과 사뭇 다른 현상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다시 양국 간 현안을 도마에 올릴지 알 수 없는 만큼 불확실성이 축적되고 있다는 경계론이 여전하다. 따라서 불확실성에 휩싸여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상수가 될 것이 확실한 이슈에 대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점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 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거론한 양국 조선 분야 협력 말이다.

피터 리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은 조선업 재활성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과의 해양 세력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국가적 재건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제 미국은 동맹국 및 파트너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현실에 부닥쳤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이에 맞춰 양국 조선 분야 협력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2025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보고하며 경제·안보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범부처 조선 태스크포스(TF)’ 구성 계획을 밝힌 것이다. 정부는 이 TF를 통해 한·미 조선 협력 패키지를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갖가지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현재까지 사실상 상수가 된 현안은 양국 조선 분야 협력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특정국에 대한 고율·보편관세나 수출통제 등 각종 보호주의 카드가 거론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한 정책이 확정적으로 발표되지 않는 한 정부는 먼저 공공연하게 ‘대응책’을 거론할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조선 협력이 양국의 현안으로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소통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정부가 구성한 조선 TF가 향후 어떤 협력 방안을 도출해낼지 기대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조선 분야 협력을 요청하면서 터무니없이 낮은 조업 단가 같이 한국 조선업계에 부담이 될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미 조선 협력 과정에서 국내 조선업계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도 이번 조선 TF의 임무 중 하나로 거론된다.

다만, 양국 조선 협력을 계기로 인도·태평양 동맹 조선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감안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만큼 조선 TF가 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대응책을 도출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리 연구위원은 미군이 한국 조선소를 시작으로 다양한 동맹국 조선소와의 선박 유지보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비롯해 지난해 오커스(AUKUS, 미·영·호주 안보동맹)의 개정안에서 확립된 잠수함 유지보수 모델을 확장하는 방안도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그는 오커스와 유사한 법적 틀을 마련해 동맹국 간 공동 전투함 생산 추진으로 협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조선 분야 협력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보호주의의 피해를 상쇄할 만한 장기적 대응 전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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