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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검정치마 ‘기다린 만큼 더’

“검정치마 좋아하세요?” 마주 앉은 지 10분도 채 안 된 15세 소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느낌이 어떨까. 이야기의 맥락은 이렇다.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진로 특강을 간 적이 있다. 학교 소개 책자에 내용이 실렸는데 어느덧 중3 자녀를 둔 중년의 제자가 그걸 읽은 모양이다. 인연을 설명하며 지금 이분은 노래채집가이기도 하다니까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새봄에 내 아들 녀석의 후배가 될)이 기특하게도 아빠의 스승을 한번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이다.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만나주는’ 사람이 된다는 거. 어디 쉬운 일인가.

“검정치마 좋아하세요?” 같은 질문을 같은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번엔 내가 던졌다. 기습공격(?)을 당한 대상은 내년에 서른이 되는 동갑내기 장교 부부다. 두 사람 모두 뜻밖이라는(우린 알지만 어떻게 귀하가) 표정을 짓는다. 소년과의 일화를 먼저 소개하니 현역 대위인 부인이 흥미로운 과거사를 털어놓는다. 소대장 시절 전역을 앞둔 운전병과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다. 휴식 시간에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길래 제목이 뭐야 물었더니 “검정치마 좋아하세요?”라고 되물었다는 거다. 말년 병장이 듣던 음악은 드라마 ‘또 오해영’의 OST ‘기다린 만큼 더’였다. 자, 지금까지도 검정치마를 미스터리 영역에 가둔 독자라면 ‘기다린 만큼 더’ 속이 후련해질 순간이 다가왔다. 검정치마의 정체는 바로 그 노래를 만든 싱어송라이터(미국 이름 Bryan Cho)다. 한국 이름이 조휴일인데 검정치마 덕분에 이번 연휴는 진짜로 음악과 함께하는 휴일을 선물로 주고받은 셈이 됐다.

음악은 다양한 경로로 우리를 맺어준다. 짐작건대 검정치마의 노래 중 일부는 우리 또래 친구들도 친근하게 받아들일 성싶다. 특히 ‘내 고향 서울엔’이 그렇다. 일단 무슨 말인지 또렷이 알아들을 수 있고 노랫말에 정화기능이 포함돼 있어서 흐트러진 마음을 정돈시켜준다. ‘부산 집 화단엔 동백나무꽃이 피었고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안부를 물어볼 때면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죠. 거긴 벌써 봄이 왔군요 하지만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눈 비비며 겨울잠을 이겼더니 내 고향 서울엔 아직 눈이 와요. 쌓여도 난 그대로 둘 거예요.’

열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검정치마(1982년생)는 영어 수업 시간에 낙서하다가 선생님께 들켰다. 선생님이 내린 조치는 무엇일까. 야단치는 대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네가 원한다면 너는 수업 시간에 벽면 전체를 너의 도화지로 만들어라.” 창의적 낙서로 유명해진 검정치마는 나중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교내신문에 삽화도 그리게 됐다. 겁을 주는 선생님과 희망을 주는 선생님. 결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좋은 인연은 반드시 좋은 인생으로 보답한다.

예술은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뜻밖의 지점에서 마주친다. ‘검정치마를 좋아하세요’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연결된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표지 제목(Aimez-vous Brahms…)에 반드시 말없음표(줄임표)를 붙여달라 출판사에 요청했다.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주인공(39세)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연하남(25세)의 조바심과 배려심이 줄임표에 담겨 있다(실제로 브람스는 14세 연상이던 클라라 슈만을 짝사랑한 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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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말이 나뒹구는 시절일수록 말없음표의 가치가 돋보인다. ‘언제라도 쉽고 빠르게 표현하고 맘에 없는 말은 절대 고민하지 않고 뭔가 아쉬울 땐 밤 지새우고 남들이 아니라는 것도 상관없지’(검정치마 ‘한시 5분’). 검정치마가 포착한 ‘한시 5분’은 두 바늘이 한자리에 머무는 시간이다. 세대가 달라도 고향이 달라도 좋아하는 것이 달라도 편견 없이 가끔은 한자리에 머물러 대화할 수 있다면 세상이 좀 달라질 것 같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