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마냥 기쁘지 만은 않습니다. 이제 진짜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에 심란하기도 합니다. 훗날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가 된 한 청년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서른 살 생일을 보냈습니다.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 ‘렌트’는 20세기 말, 뉴욕 브로드웨이 최고의 뮤지컬이라 평가받았지만, 그는 ‘렌트’의 첫 공연 전날 영원히 눈을 감고 맙니다. 라슨은 죽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뮤지컬도 만들고 있었는데요. 바로 ‘틱틱붐’ 입니다. 시계 바늘처럼 ‘틱틱’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붐’하고 터져 버릴 것 같은 라슨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 제목입니다. 이 작품은 현재 한국어 버전 뮤지컬이 공연 중이고, 2021년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무대와 영화를 모두 본 기자가 뮤지컬‘틱틱붐’과 동명 영화의 차이점, 매력을 비교해봤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뮤지컬 ‘틱틱붐’의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앙상블이 더해진 풍성한 음악, 황석희의 맛깔스러운 번역… 뮤지컬 ‘틱틱붐’= 현재 국내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틱틱붐’은 기존 3인극에서 5명의 앙상블이 더해져 총 8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릅니다. 그만큼 풍부한 앙상블의 노래를 즐길 수 있죠. 앙상블의 매력은 ‘30/90’, ‘Louder than words’ 등 작품의 대표 넘버에서 두드러집니다.

특히, ‘30/90’은 뮤지컬의 원래 제목이기도 했는데요, 1990년에 30살이 된 주인공 ‘존’이 생일을 앞두고 이룬 것 하나 없다며 고민하고 방황하는 심정을 그려낸 곡입니다. 낮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밤엔 곡을 쓰는 가난한 예술가죠. 존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존과 여자친구 수잔의 다툼을 재밌는 말장난으로 풀어낸 ‘Therapy’, 일요일에 식당에서 일하며 진상 고객들에 짜증난 존의 심정을 표현한 ‘Sunday’ 등 재밌는 넘버가 한가득입니다. 뮤지컬의 재미는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죠. 이번 작품에는 번역가 황석희가 참여한 한국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맛깔스러운 번역을 선보였습니다.

공간의 한계는 회전하는 정글짐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무대 한가운데 가로·세로·높이 모두 6m 이상의 거대한 놀이터처럼 보이는 정글짐을 설치했습니다. 존의 집과 아르바이트하는 식당, 존의 가장 친한 친구 마이클의 집과 회사 등 여러 장소를 보여줍니다. 이런 게 뮤지컬의 매력이죠.

뮤지컬은 라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이 ‘Louder than words’를 함께 부르며 마무리됩니다. 노란 공이 잔뜩 쏟아지는 장면은 덤이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가겠다는 희망찬 곡이지만 라슨의 삶을 아는 관객으로선 씁쓸하게 느껴지는 결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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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앤드류 가필드와 함께 90년대 뉴욕 속으로… 영화 ‘틱, 틱…붐!’ =영화 ‘틱, 틱... 붐!’은 라슨이 로저(마이클 역), 카레사(수잔 역)와 함께 하는 3인극 형식의 뮤지컬 영화입니다. 라슨의 삶에 조금 더 개연성 있는 설명을 부여했습니다. 뮤지컬 ‘렌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에이즈와 성소수자, 빈곤 등 문제를 다룬 사회 고발성 작품이었거든요. 영화는 라슨이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됐는지 보여줍니다. “작년에만 친구 셋의 장례식에 갔어요. 제일 나이 많은 애가 27살이었죠.”,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등 대사를 들으면 라슨이 뮤지컬을 통해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라슨과 친구들이 살던 90년대의 뉴욕 거리를 현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라슨의 방에는 매킨토시가 놓여 있고, 에이즈에 걸린 친구들은 1년 안에 죽지 않을지 두려움에 떱니다. 무대극 작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영화를 통해 라슨의 삶에 깊게 빠질 수 있을 거예요.

뮤지컬과 달리 생략된 노래도 있습니다. 라슨과 수잔이 초반부에 부르는 ‘Green Green dress’가 대표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볼 때 흥겹게 들었던 노래였던지라 삭제된 게 아쉬웠습니다. 영화였기에 선택한 새로운 연출도 있습니다. ‘Sunday’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노동의 고단함을 보여주기보다는 햇빛이 내리쬐는 식당과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연출로 존의 상상 속 세계를 그린 듯 합니다.

익숙한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를 감상하기에도 좋습니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한 앤드류 가필드가 존 역을 맡았습니다. 라슨의 생전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재현했습니다. 뮤지컬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낸 바네사 허진스의 노래도 귀를 즐겁게 합니다.

◇기자의 선택은… 선 뮤지컬 후 영화! =‘틱틱붐’을 좀 더 재밌게 즐기고 싶다면 뮤지컬로 먼저 보기를 추천합니다. ‘뮤지컬 작곡가’인 라슨이 전하는 메시지는 뮤지컬을 통해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대라는 한정적 공간에 라슨의 인생을 담아내기 위해 제작자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로 된 가사로 작품을 충분히 이해한 뒤 원어로 노래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뮤지컬 ‘틱틱붐’은 오는 2월 2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됩니다. 배두훈·장지후·이해준이 존 역할을, 김수하·방민아가 수잔 역할을 맡았습니다.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영화를 감상한다면 라슨의 삶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