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 "법정 진술은 위법수집 증거에 의한 2차 증거"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만을 토대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법정에서 범행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더라도 해당 진술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3년, 추징금 15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도 A 씨에게 마약을 전달해 같은 혐의로 기소된 B 씨에게 징역 3년, 추징금 15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은 각 법정진술에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는데, 이러한 판단에는 2차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A 씨는 마약 판매자로부터 2023년 6월 합성대마를 구매·사용한 혐의로, B 씨는 A 씨의 부탁을 받아 마약 판매자가 아파트 전화단자함에 숨긴 합성대마 카트리지를 수거해 A 씨에게 건네 A 씨와 공모해 합성대마를 사들인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이들의 범행은 A 씨가 택시에서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택시기사가 경찰에 습득물로 넘기면서 발각됐다. 경찰은 휴대전화 소유자를 확인하기 위해 저장된 정보 등을 확인하다 필로폰 구매 정황으로 의심되는 메신저 대화 내역을 발견했다. 이에 경찰은 A 씨 휴대전화에 저장됐던 영상이나 B 씨와의 대화 내역 등 마약 관련 범행에 관한 정보를 복제·출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A 씨에게 참여 기회를 보장하거나 참여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경찰은 A 씨 휴대전화에서 얻은 내용을 토대로 혐의사실을 특정해 A 씨와 B 씨를 긴급 체포하고 수사를 벌여 A 씨를 2023년 9월, B 씨를 같은 해 11월에 각각 재판에 넘겼다.

A 씨와 B 씨는 1심에서 각각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휴대전화와 그에 기초해 획득된 전자정보 등 2차 증거들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해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달리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능력 있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휴대전화 정보나 메시지 내역 등은 모두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여서 증거능력이 배제된다면서도 A 씨와 B 씨의 1심에서의 법정자백은 임의성이 인정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들에게 각각 징역 3년, 추징금 15만 원을 선고했다.

판례에 따르면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한 효력 불인정) 원칙에 따라 위법수집 증거에 기초해 수집된 2차 증거도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 원칙이나, 2차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사정을 고려해 인과관계가 희석 또는 단절된다고 평가되는 예외적 경우에 한 해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전자정보가 없었다면 수사하거나 기소하기 어려워 A 씨와 B 씨가 법정에서 자백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위법수집 증거인 전자정보가 유일한 점 등을 토대로 인과관계가 희석·단절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 씨와 B 씨가 공소사실 기재 행위를 인정하는 듯한 법정진술을 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다름 아닌 위법하게 수집된 전자정보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기관이 쟁점 공소사실과 관련해 수집한 증거는 (휴대전화) 대화 내역이 유일하다.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A 씨와 B 씨의 법정진술은 위법하게 수집된 대화 내역 등 전자정보에 기초한 2차 증거들"이라며 "인과관계의 희석 또는 단절을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아 증거능력이 부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