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연방법원 “명백히 위헌”
행정명령 제동… 트럼프 “항소”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미국 연방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이민법을 뒤집고 수십 년간의 선례를 뒤집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첫 번째 좌절을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23일 AP·로이터통신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시애틀 연방법원의 존 코에너 판사는 워싱턴·애리조나·일리노이·오리건주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14일간 차단한다고 결정했다. 코에너 판사는 미국에서 출생하는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온 정책(수정헌법 14조)을 불법 체류자의 자녀에게는 제한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명백히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코에너 판사는 또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 측 변호사들을 향해 “어떻게 변호사들이 이 행정명령이 합헌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신이 40년 넘게 판사직을 수행해오는 동안 이렇게 명백히 위헌적인 사례가 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에너 판사의 이번 결정은 행정명령 시행을 당장 막아달라는 원고 측 요청을 일부 수용, 긴급 차단 명령을 내린 것으로 추가로 행정명령 시행을 막을지 여부는 2월 5일 심리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내려진 연방 판사의 결정은 전국에 효력을 미친다. 시애틀에서 제기된 이 소송의 재판은 미 전역의 22개 주와 전국의 여러 이민자 권리 단체가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 총 5건 중 처음으로 열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하자마자 불법 체류자들을 강제 추방하기 위한 각종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여기엔 어머니가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지 않으며 아버지가 미국 시민이 아니거나 영주권자가 아닌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도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머니가 합법 체류자이더라도 일시 체류자 신분이고 아버지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도 포함된다. 시애틀 소송 원고 측에 따르면 2022년 불법 체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시민권자 자녀는 약 25만5000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 결정에 반발하며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분명히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도 “행정명령은 다음 달까지는 발효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 입장을 보다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