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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쿠데타

■ 설득의 정치

왕정으로 출발 로마
폭군 몰아낸뒤 공화정
힘커지자 야심가 꿈틀
권력 놓고 내전상태

‘내란’ 카틸리나 탄핵
‘독재’ 카이사르 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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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그대는 우리 인내심을 악용할 셈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대 광기는 우리를 조롱할 것인가? 어느 지경까지 그대 만용은 고삐 풀린 채 날뛸 것인가? 그대 계획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대 음모는 좌절되었다. 여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음을 보지 못하는가? 지난밤에, 지지난밤에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어디에 있었는가? 누굴 불러 모았는가? 어떤 계획을 꾸몄는가? 우리 가운데 누가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벌써 사형을 당해야만 했고, 그대가 우리에게 모의했던 그 파멸이 바로 그대에게 가해져야만 했다.”

기원전 63년, 로마 원로원에서 키케로가 카틸리나를 탄핵한 연설이다. 카틸리나는 군사력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여 원로원을 무력화시키고, 로마의 공화정을 무너뜨린 후에 독재적 권력을 쥐려는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키케로도 제거 대상이었다. 그러니 그의 연설엔 서슬 퍼런 비장한 복수심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의 연설은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려는 숭고한 정치적 이념의 위대한 선언이었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세운 로마는 왕정으로 시작했지만, 기원전 509년 루키우스 브루투스가 독재적 폭정을 일삼던 일곱 번째 왕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낸 후부터 공화정이 되었다. 로마가 ‘공화정(Republic)’이 되었다는 것은, 국가가 어떤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Publica) 것(Res)’이며, 따라서 모든 권력과 주권은 시민에게 있음을 약속한 것이다. 반왕정의 공화적 혁명은 정의롭고 아름다웠고, 이후로 로마는 더욱더 힘을 키워나가며 지중해의 패권자로 성장했다.

그런데 로마의 몸집이 커지자, 정치적 야망을 품은 자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충돌하면서 로마는 내전 상태가 되었다. 로마의 구원자로 떠오르며 총 일곱 번이나 집정관에 오른 마리우스, 그와 겨루어 이기고 로마의 권력을 잡은 후 종신 독재관의 자리에 오른 술라, 이들의 행보는 로마 공화정의 위기와 황제의 실루엣이었다. 이 와중에 끼어든 자가 카틸리나였다. 사실 그는 앞선 이들에 비할 수 없는 함량 미달의 인사였다. 그를 대상으로 낸 키케로의 연설이 아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단지 카틸리나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잠재적 독재자들을 겨눈 강렬한 경고였다.

제국을 향한 야망은 여전했다. 드디어 카이사르가 등장했다. 갈리아 지역을 정복하고, 바다 건너 브리타니아 섬으로, 라인강을 건너 게르만인들의 영토로 진출하며 군사적 업적을 이룬 그가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불법적으로 루비콘강을 건넜다. 쿠데타였다. 그는 성공했고, 종신 독재자의 자리에 올라 오만한 태도로 원로원을 쥐락펴락했다. 그때 키케로의 연설에 깃든 공화주의적 열정은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는 카이사르에 칼을 꽂았다. 로마는 카이사르의 것이 아니라, ‘인민 모두의 공공의 것(Res Publica)’임을 선포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때의 브루투스가 이런 말을 하게 했다. “내가 카이사르를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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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끝내 로마는 제국이 되었고,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되었다. 독재의 유혹은 그만큼 달콤하며, 중독성이 강했다. 반면 나와 다른 목소리를 존중하며, 논쟁을 견디며 타협을 이루어나가는 민주와 공화의 길은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슬기롭고 의롭고 이로운 정치의 길이 아닐까. 로마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권력은 일인자에게 집중되었고, 그 절대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이 파리처럼 꼬이면서 로마의 정치적 구조는 확고해지며 불량해졌다. 현명한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은 황제들이 막대한 권력을 감당하지 못해 극도의 향락에 빠지고 정적을 무자비하게 척결하며 폭군이 되었다. 공화정을 버리고 제국이 되면서 절정에 이른 순간부터 로마는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가 키케로의 연설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