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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베토벤, ‘장엄미사’ 작품. 123

대주교 된 루돌프 대공에 헌정
하이든·모차르트 작품 답습않고
이전에 없던 독창적인 음악 작곡

베토벤은 전 생애에 걸쳐 거의 전 장르의 작품들을 두루 작곡했지만 유독 교회음악에는 소홀했다. 교회음악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장르는 미사(가톨릭의 중심이 되는 예식)곡이라 할 텐데 베토벤은 평생 단 두 개의 미사곡만을 작곡했다. 그중 하나는 36세던 1807년 작곡한 ‘C장조 미사, Op. 86’이고 다른 하나는 52세가 되던 해인 1823년에 작곡한 그 유명한 장엄 미사(Missa Solemnis op. 123)이다.

당시 음악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교회와 궁정뿐이었다. 음악가들은 교회 절기에 맞춰 매달 새로운 작품을 작곡해야만 했고 궁중 음악가들 또한 그들이 모시는 주군이 참석하는 미사를 위해 다양한 형식의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하지만 베토벤에겐 그럴 이유가 없었다. 23세가 되던 해 자유 예술가이길 선언한 이후로 그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는 창작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1819년 48세의 베토벤은 반드시 미사곡을 작곡해야 할 만한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다름 아닌 루돌프 대공(1788∼1831)이 다음 해인 1820년 3월 9일 추기경으로 영전해 올로모우츠의 대주교로 임명될 거라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자신의 피아노 제자이자 평생에 걸쳐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루돌프 공을 위해 곧장 장엄미사곡을 쓰기로 결심한다. 장엄미사란 가톨릭의 규모가 큰 미사를 일컫는 말로 미사 대부분을 노래와 함께 드리며 거룩하고 성대하게 거행된다. 그 성대한 미사에 쓰이는 음악이 바로 장엄 미사(미사 솔렘니스, Missa solemnis)곡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부디 나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나의 미약한 재능을 통해 그날의 엄숙한 예식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베토벤

베토벤은 루돌프 대공의 서고에 쌓인 옛 수도사제들의 노래부터 다양한 종류의 전례음악들을 탐독했고, 미사를 거행할 때 쓰이는 라틴어로 된 기도문인 미사통상문(미사곡에서도 동일하게 쓰인다)을 세세하게 연구했다. 미사통상문 전문에 걸쳐 정확한 뜻은 무엇이며 어떤 뉘앙스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악과 결합돼야 하는지에 대해 그 무엇 하나 빼놓지 않았다. 베토벤이 최고의 음악가라 여겼던 바흐와 헨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곡의 완성은 더디기만 했다. 1820년 베토벤은 장엄미사의 첫 곡인 ‘키리에(Kyrie, 자비송)’와 두 번째 곡인 ‘글로리아(Gloria, 대영광송)’만을 완성했을 뿐, 예상되는 곡의 규모로 볼 때 이런 속도로는 도저히 미사가 열리는 1820년 3월 9일까지는 마칠 자신이 없었다.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베토벤은 선배 음악가들, 미사곡에 있어 대가들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답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을 쓰는 한편 대위법적으로는 정밀한 스위스의 시계처럼 치밀하게 설계 조직된 최고의 작품을 쓰고야 말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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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약 4년간의 잉태를 거쳐 마침내 1823년 3월에 탄생됐고 루돌프 대공이 대주교로 취임한 지 3년이 되던 날 당사자인 루돌프 추기경에게 헌정됐다. 베토벤의 고상한 후원자 루돌프 대공은 누구보다 이 상황을 깊이 이해했다. 베토벤이 여느 작곡가들처럼 그저 진상하기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해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한 걸작을 잉태 중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베토벤,‘장엄미사’ 작품. 123

베토벤 최고의 걸작 중 하나임과 동시에 바흐가 남긴 ‘B 단조 미사’와 더불어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미사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작품의 초연은 작곡된 이듬해인 1824년 5월 7일 베토벤의 마지막 역작이었던 제9번 교향곡과 함께 이뤄졌다. 하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교회음악이 공공연주에서 발표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개의 대찬송가’라는 이름으로 Kyrie(자비송), Gloria(대영광송),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 세 곡만이 공연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