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조선 20%가 ‘러 그림자선단’… 제재 피해 석유 수출

■ Global Focus

러시아産 석유 70% 운송 담당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제사회 제재로 막힌 석유 수출길을 ‘그림자 선단’으로 뚫어내고 있다. 다른 나라 선적으로 위장한 그림자 선단에 석유를 실어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우방국에 밀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진 상황에서 러시아 경제를 좌우하는 석유 업황마저 무너지면 국가적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방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와 금수 조치를 전면 시행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그림자 선단으로 구성된 해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석유를 수출하며 서방의 제재를 우회해왔다. 러시아 에너지 산업이 국내총생산(GDP)과 수출에서 각각 27%와 57% 이상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림자 선단의 규모는 1000척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일엔 러시아산 석유를 실은 파나마 선적 유조선이 독일 북서부 뤼겐섬 인근에서 운항하다 독일 해양구조 당국에 발각됐다.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엘리자베스 브로 선임 펠로는 그림자 선단에 대해 “이제 전 세계 유조선 비율의 20%에 가까워지고 있어 관리가 훨씬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키이우경제대학(KSE)은 “러시아산 석유 70%가 그림자 선단으로 운송되며 제재를 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그림자 선단으로 경제적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 충당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인도 등 우방국에 기존보다 많은 양의 원유를 저가에 파는 전략을 실행했다.

이에 2023년 러시아 정부의 세입은 역대 최대인 3200억 달러(약 461조4400억 원)를 기록했으며, 세입의 약 3분의 1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그림자 선단이 밀수출에 이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의 핵심 인프라까지 훼손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이 훼손됐는데, 서방은 그림자 선단을 동원한 러시아의 공작으로 의심하고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는 발트해에서 군대 주둔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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