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 박영규의 조선 궁궐 사람들 - (33) 왕실 의복·재물 관장 ‘상의원’

경국대전에 68종 있었다 기록
왕마다 취향 달라 긴장의 연속

태종, 복장·음식 등 까탈 심해
가는베 소재 버선에 ‘노발대발’

세종도 “옷 마음에 안든다”며
총애하던 백운보 감옥에 보내
이후 다른 실수엔 ‘곤장 80대’

# 왕실의 옷과 보석을 담당하는 곳

상의원은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의복을 관장하고, 재물과 보화를 관리하고 제조하며 공급하던 곳이다. 상의원은 일상적인 관례에 따라 매달 초하루와 보름, 생일, 명절, 절기에, 대전·대왕대비전·중궁전·세자궁·빈궁·현빈궁 등 각전과 각궁에 정해진 물품을 진상하고, 가례·책례·존숭·능행 등 왕실 의례가 있을 때 또는 왕의 명령이 있을 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였다.

상의원은 고려시대엔 상의국, 장복서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초에 이르러 상의원으로 고정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내내 같은 명칭으로 불리다가 고종대인 1895년에 상의사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1905년에 상방사로 이름을 바꿨다.

상의원의 위치는 경복궁에서는 영추문으로 들어가면 사도시가 먼저 보이고 다시 관상감을 만나게 되는데, 관상감 바로 뒤에 있었다. 또 창덕궁에서는 돈화문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상의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의원의 관리는 겸직인 제조 휘하에 정3품의 정 1명, 종5품의 판관 1명과 별좌 다수, 정6품의 주부 1명과 별제 다수, 종7품의 직장 2명이 있었다.

이들 관리 외에 상의원에 소속된 수백 명의 장인이 있었다. 상의원에 예속된 공장, 즉 기술자의 숫자는 ‘경국대전’에 68종 597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개 ‘경국대전’에 기록된 숫자보다는 많기 때문에 상의원에 예속된 장인들의 숫자만 해도 600명은 족히 넘었다는 뜻이다.

그들 장인 중에 우선 직물과 관련해서는 성장, 능라장(綾羅匠·비단 장인), 방직장(紡織匠), 합사장(合絲匠), 연사장(鍊絲匠) 등 220여 명으로 전체의 3분의 1 정도 되었다.

이들 장인은 비단이나 면직류 등을 직조하는 역할을 했는데, 성장(筬匠)은 직접 직조하는 장인이 아니었다. 성장은 바디를 만드는 장인을 말하는데, 바디는 직조 도구의 하나다. 바디는 가늘고 얇은 대오리를 참빗처럼 세워서 두 끝에 앞뒤로 대오리를 대고 단단하게 실로 얽어 만든 것이다.

이것은 살의 틈마다 날실을 꿰어 날실을 고르게 해주는 한편, 북의 통로를 만들어주고 씨실을 쳐서 직조를 조밀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직물을 제직할 때 경사의 밀도를 정하고 위사를 투입할 때 북이 통과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투입된 위사를 직물이 짜인 끝까지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200여 명의 직조 장인 외에 복식류, 관모류, 피혁과 모피류, 신발류, 염색과 도료, 무기류, 금은보화류, 마구류(馬具類), 금속류, 빗류, 악기류, 주물, 옹기 등을 다루고 제작하는 장인이 약 400명 더 있었다. 그리고 이들 장인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외부의 장인을 불러 썼다.

# 가슴 졸이며 사는 상의원 의복 장인들

상의원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무서운 직장이었다. 상의원은 왕실에 소용되는 의복과 버선, 모자 등을 짓는 것이 가장 주된 임무다. 그런데 이 복장과 관련해서는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마음에 쏙 들게 하기 쉽지 않다. 특히 왕이나 중전이 복장에 관해 까탈을 부리면 상의원 관원들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상의원 우두머리는 늘 종종걸음을 치며 왕이나 왕비의 안색을 살펴야만 했다. 그만큼 상의원 관원으로 사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태종은 복장이든 음식이든 매우 까탈을 부린 왕이었다. 당시엔 사옹원처럼 상의원에도 3품 무록관인 제거 벼슬이 있었고, 제거가 실질적인 상의원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1416년 5월 1일에 상의원 제거 심서에게 태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태종이 노발대발한 이유는 버선 때문이었다. 상의원에서 임금이 신는 버선을 지어 올렸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왕은 버선을 두 번 신는 일이 없었다. 항상 새 버선만 신기 때문이었다. 왕이 한 번 신은 버선은 신하들에게 하사되거나 내시들에게 선물로 내려졌다. 그래서 왕이 신는 버선은 항상 새로 지은 것이었다. 그런데 태종이 갑자기 버선을 가지고 까탈을 부렸다.

상의원에서 올린 버선은 ‘세포말’이었다. 세포말이란 가는 베로 만든 버선을 지칭하는데, 이것은 좀 미끄럽기도 하고 신고 벗을 때 잘 찢어진다. 그래서 태종은 격노하며 당장 심서를 옥에 가두라고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심서를 옥에 가두는 것을 만류했던 모양이다.

사실 음력 5월이라 이미 여름이 시작되어 날씨가 더워진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는 베로 된 버선을 올리는 것이 옳은 처사였다. 태종도 좀 있다가 그 상황이 이해가 됐는지 심서를 옥에 가두지 말라고 다시 명령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이제부터 가는 베는 쓰지 말라.”

이렇게 이 사건은 다행히도 태종의 배려심 덕에 임금의 버선을 가는 베로 만들지 말라는 요구로 끝났다. 하지만 대개 상의원 관원들에 대한 징계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종대의 뛰어난 의복 장인 백운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옷 짓는 능력이 뛰어난 덕에 세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그는 오로지 옷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 벼슬을 얻었고, 옷을 잘 지었다는 공로로 때때로 세종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세종 7년(1425년) 7월 의금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를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세종이었다. 그가 어의를 지어 올렸는데, 이것이 세종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엔 의금부 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를 옥에 가두고 나서 세종은 좀 너무 했나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풀어주려고 했는데, 주변 신하들이 반대하며 말했다.

“운보는 별다른 재주는 없으나, 다만 옷을 짓는 법을 알기 때문에 성은을 지나치게 받아 벼슬이 4품에 이르고, 인해 본원의 별좌에 차임되었으니,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지극한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인데, 망령되게 스스로 높은 체하고 진상하는 옷을 제 손으로 만들지 아니하여 체제에 맞지 않게 하였으니, 죄를 주어 뒷사람을 깨우치게 하기를 신 등은 원합니다.”

하지만 세종은 그래도 백운보에게 죄를 주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대들의 청함이 매우 사리에 합당하다. 하지만 죄를 더하지는 말고 그대로 가두라.”

그리고 세종은 나흘 만에 백운보를 석방시켰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부터 1년 6개월 후에 백운보는 곤장 80대를 맞는 고초를 겪는다. 당시 백운보는 상의원 별감 자리에 있었는데, 그의 죄목을 사헌부는 이렇게 보고했다.

“상의원 별감 백운보는 제복(祭服)에 적석으로 잘못 바쳤으니, 곤장 80대를 쳐야 할 것입니다.”

제복이란 제사 지낼 때 입는 옷이고, ‘적석’은 붉은 신발을 의미한다. 즉, 제사 지낼 때 신는 신발을 잘못 만들어 올린 죄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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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백운보는 사헌부의 보고대로 곤장 80대를 맞아야 했다. 옷 짓는 일이라면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백운보도 이렇듯 옥에 갇히기도 하고 곤장을 맞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상의원 관원들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

■ 용어설명 - 사옹원(司饔院)

이조 소속으로 궁중의 음식을 담당한 관청. 조선 왕조는 개국 후 초기에 고려 왕조의 제도를 본받아 ‘사선서’를 설치했고, 이곳을 ‘사옹방’이라고 부르다가 1467년(세조 13년) 4월 사옹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전선사’(典膳司)로 고칠 때까지 428년 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