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00년 아버지(오른쪽)가 영세 받은 날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 故 박덕순 (1919∼2015) <하>

“정곤아!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하다못해 굼벵이 한 마리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단다. 우리가 감내할 수 없을 시련이란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련을 줄 뿐이다. 나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고난은 행복 역으로 가는 승차권이다’라고. 나도 네 아버지가 다른 분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충격이 커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었다. ‘현해탄에 모든 것을 다 뿌리자. 사랑도, 원망도, 후회도 다 뿌려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자’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이 엄마가 일본에 가자마자 양재학원에 등록을 하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성당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손때 묻은 성경책을 제 손에 쥐여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 양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우리 정곤이가 나쁜 마음 먹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이 어려움을 견뎌낼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지금 비록 약해진 몸이지만 마음마저 약해지지 않도록 해 주시옵소서.
부족하고 또 부족한 이 어미가 정곤이에게 버팀목이 되고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저에게도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간구하나이다. 아멘!”

어느새 어머니의 양 뺨으로 이슬방울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함께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낭송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어머니께서는 식탁에 앉아 사과를 깎았습니다. 사과를 깎으며 평소에 즐겨 부르시던 가톨릭 성가 151장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를 울먹이며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3절 끝까지 울면서 부르셨습니다. 방바닥에 떨어지는 어머니의 눈물방울이 저에게는 진주 알로 보였습니다.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 이제 저는 74세가 되었습니다. 아직 건강하게 진료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수필가로 문학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봄에는 명예 문학박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설날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들 김정곤(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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