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소설가

IT 강국이었던 대한민국
AI 경쟁선 왜 뒤처졌을까
창작도 챗GPT 활용 시대

무작정 외면만 해선 안 돼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세상
맞닥뜨려도 괜찮지 않을까

새로운 기기나 신문물이 등장할 때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이 들수록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인식은 이제 맞지 않는 듯하다. 베이비붐 세대도 컴퓨터에 익숙하고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이니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은 개인의 성향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다.

20년 전만 해도 60대, 심지어 50대도 밀려오는 신문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였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이 그때쯤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과 연결고리가 없는 전혀 생소한 문물을 지천명이 넘어서 익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그 연배 선생님들을 만나면 실제로 많이 어려워하셨다. 신문물이 껄끄럽다며 “삭막하게 살지 말고 인간답게 살자”시던 두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순수와 무공해’라는 에세이를 기고한 적도 있다.

한 분은 60대의 소설가였는데, 원고지에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컴퓨터에 입력해서 메일로 송고해준다고 하셨다. 문자도 보낼 줄 모른다는 두 분에게 “어렵지 않으니 익히시라”고 권하자, “우리는 끝까지 순수를 지키며 무공해로 살 거야”라고 하셨다. 지금 세상은 순수를 지키며 무공해로 살기 어려운 방향으로 초고속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기기나 신문물이 등장할 때마다 두 분이 떠오르면서 ‘놓치면 못 따라간다’는 경각심을 갖곤 한다.

웹 소설 열풍 앞에서도 잠깐 두 분 생각을 했다. 2019년, 친하게 지내던 소설가 셋이 느닷없이 웹 소설 얘기를 꺼냈다. 종이책이 워낙 안 팔리는 데다 독자들 취향도 바뀌는 중이니 새 시장으로 가보겠다는 각오였다. 당시 내 앞에 다가온 새로운 변화이긴 했으나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웹 소설 작법을 익히느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온 장편소설이나 열심히 쓰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최근 들이닥친 변화라면 챗GPT이다. 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2022년 11월 선보인 챗GPT가 세계를 휘몰아치더니 창작까지 넘본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인공지능(AI)이 쓴 소설이 해외 공모전 최종에 올랐느니 당선됐느니 하는 뉴스까지 나와 마음이 뒤숭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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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작가 7명이 챗GPT와 함께 소설 쓰는 과정을 담은 KBS 다큐인사이트를 시청하게 되었다. 작가들은 한결같이 “창작에 챗GPT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복선을 챗GPT가 알려준 경우도 있고, 글이 막혔을 때 여러 유형을 제시하자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다면서. ‘질문을 잘하면 훨씬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것과 ‘챗GPT를 안 이상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작가 7명과 챗GPT가 함께 쓴 글은 장르소설 브랜드 네오픽션이 ‘매니페스토’(Manifesto)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흥미를 느꼈지만 챗GPT 무료 버전을 두세 번 사용해본 게 고작이었다. 챗GPT와 논의하지 않아도 해오던 일에 떠밀려 바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4년 11월 지인이 “생성형 AI 교육을 받자”고 제안해왔다.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빨리하라는 말로 들려 함께 듣기로 했다.

생성형 AI 교육은 단 1회 5시간 동안 이뤄졌는데, 내용은 ‘프롬프트 쓰는 법’을 알려주는 정도였다. 어떤 식으로 AI와 대화를 하는 게 효율적인지 얘기하면서 실습하는 게 교육의 전부였다. 그보다는 AI 시장 현황과 향후 전망 같은 얘기에 더 관심이 갔다. 강사는 현재 30% 정도가 생성형 AI를 쓴다고 추정하면서 “아직 늦진 않았지만 대신 이 트렌드를 놓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강사는 우리나라가 생성형 AI 시장 진출에 늦었다고 개탄하더니 “우리가 누구냐. K-콘텐츠로 세계를 휩쓰는 나라 아니냐. 외국에서 만든 생성형 AI를 이용해 만든 창작물로 세계를 휩쓸자”고 독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생성형 AI를 쓰는지 물어봤더니 챗GPT, 챗봇, 클로드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내 주변을 보면 30%가 아니라 100% 사용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모두 깜찍하게 조용히 AI 비서를 두고 있었다.

그나저나 과거 정보기술(IT) 혁명 때 세계 최강국으로 이름을 날린 대한민국이 AI 기술 경쟁력에서 뒤처진 원인이 뭔지 궁금했다. 입법 지연과 과도한 규제 환경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던 AI 기본법이 제22대 국회 들어서 20여 건 제출되었으나, 일부 의원들이 규제 성격이 짙은 법안을 제출해 우려를 낳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은 2020년부터 ‘국가 AI 이니셔티브’ 법을 제정해 AI 산업을 지원해 왔고, 2022년에만 17억 달러(약 2조5000억 원)를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 지원에 힘입어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빅테크들이 글로벌 AI 시장에서 일찌감치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단다.

코로나19 기간에 멈춰선 듯했던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몰아닥칠지 두려우면서도 궁금하다. 100세가 되더라도 뭐든 맞닥뜨려보자는 각오로 달릴 계획이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순간 고립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면, 지금 80대가 되셨을 소설가 선생님이 궁금해지곤 한다. 여전히 신문물을 외면하시는지. 숨 가쁜 세상, 때때로 순수와 무공해로 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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