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테러단체 KTJ가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물. 부산경찰청 제공

뺑소니로 국내 추방 뒤 멕시코, 미국 밀입국 전전하다가 범행 발각돼
경찰, 범행 끌어들인 또 다른 해외 체류 유학생도 추적 중

부산=이승륜 기자

국내에서 강제추방된 중앙아시아 국적 유학생이 밀입국으로 다른 나라를 전전하다가, 부산 체류 당시 유엔 지정 테러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던 혐의가 드러나 강제송환돼 구속됐다. 수사 당국이 국내에서 테러단체에 연루됐다가 해외로 나간 이를 국내로 강제송환한 것은 처음이다.

부산경찰청 안보수사과는 테러자금지원법 위반 혐의로 중앙아시아 국적의 A(20대) 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26일 밝혔다. A 씨는 유엔 지정 테러단체인 ‘카티바 알타우히드 왈지하드(KTJ)’ 소속 테러 자금 모집책에게 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KTJ는 옛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 ‘자바트 알누스라’의 전투부대로, 2014년 시리아 정권 타도와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결성됐다. 이 단체는 2016년 주 키르기스스탄 중국 대사관 자살 폭탄테러와 201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지난해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국제테러단체로 지정됐다.

이미지 크게보기 국제 테러단체를 지원한 혐의로 해외에서 붙잡힌 유학생이 강제송환돼 국내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제공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유학생 신분으로 부산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이던 2016년 8월부터 2022년 9월까지 6년간 SNS에 게시된 KTJ 테러 선전·선동 영상을 접한 뒤 극단주의 성향을 갖게 됐다. 이후 대학에서 알게 된 같은 국적의 B(20대) 씨가 시리아로 넘어가 KTJ 조직원이 된 뒤, SNS를 통해 A 씨를 포섭했다. A 씨는 B 씨로부터 자금 송금 지시를 받은 후, 미국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로 두 차례 77만 원을 입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B 씨는 거래소의 입금 내역을 활용해 암호화폐를 인출하는 방식으로 테러 자금을 조달했다. 당시 A 씨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KTJ에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 씨가 돈을 보낸 당시에는 KTJ가 아직 유엔으로부터 테러단체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A 씨는 2022년 9월 뺑소니 혐의(특가법 위반)로 국내에서 강제 추방됐다. 이후 그는 지난해 2월 생계를 위해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밀입국했으나, 이 과정에서 추가로 테러단체 지원 등의 위법 행위는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해외 첩보 활동 중 A 씨가 테러단체에 연루된 사실을 확인하고 추적을 시작했다. 미국 내 불법체류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체포 영장과 인터폴 적색 수배를 발부하고, 범죄인 인도 절차를 거쳐 미국 연방수사국(FBI) 및 국토안보수사국(HSI)과 공조해 지난 13일 A 씨를 검거한 뒤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

경찰은 KTJ가 유엔 테러단체로 지정되기 전에 A 씨가 자금을 송금한 점을 고려해, 유엔 지정 테러단체에만 적용되는 테러방지법 대신 동일한 처벌이 가능한 테러자금금지법을 적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테러에 연루된 외국인을 국내로 강제 송환한 최초 사례”라며 “B 씨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