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월 11일 서울 근교에 임산부용품과 태교·출산용품 등을 선보이는 베이비 페어가 열리고 있다.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하다. 박윤슬 기자

임신 7개월 차인 A 씨는 태어날 자녀의 휴대용 유모차와 유아 의자를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3곳을 돌다가 6개월은 대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일본 도쿄(東京)로 원정 쇼핑을 떠났다.

A 씨는 ‘유모차계의 벤츠’라고 불리는 B사의 휴대용 유모차와 ‘유아 의자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유아 의자를 한국보다 50만 원 정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A 씨는 "한국은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명품 유아용품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싸고, 대기도 길다"며 "태어날 아기에게 최고의 물품을 사주고 싶어 무리해 쇼핑을 해왔지만, 하루아침에 150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을 지출하고 나니 이래서 다들 재정적으로 부담이 돼 애를 안 낳는다고 하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MZ세대 예비 부모들 사이에서는 100만 원이 넘는 명품 유아용품 구매를 위해 일본 원정 쇼핑 붐이 불고 있다. 엔저와 면세 혜택을 활용하면 한국에서 구매하는 가격의 70% 정도 되는 금액에 당일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일 문화일보 취재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초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명품 유아용품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 그 배경엔 ‘텐포켓’ 현상이 지목된다. 텐포켓은 부모를 포함해 친가와 외가를 비롯해 지인까지 10명이 한 명의 자녀를 키우기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유아 명품 시장은 매년 20~30% 가량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橫濱)의 한 유아용품매장에서 일하는 B 씨는 "최근 온라인 메일을 통한 한국인 예비부모의 구매 문의가 많다"며 "일본인 예비부모들이 많이 찾지 않는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려는 경우가 많아 재고는 넉넉한 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구분짓기’ 문화가 프리미엄 명품 유아용품 시장 과열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내년 4월 자녀가 태어나는 예비 아빠 C 씨는 "아내가 아이에게 최고급 유아용품 신제품을 사주고 싶다고 해서 양가 부모님과 친척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 일본에서 11만 엔(101만 원)에 명품 브랜드 젖병부터 유모차 부품까지 사 왔다"라며 "유모차 브랜드 계급도까지 만들어지고, 유아 명품 의류 대여 업체가 인기를 끄는 걸 보며 한국사회의 비교문화가 심각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