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부상자가 본 45년만의 계엄

“탄핵 집회서 만난 젊은 세대들
‘민주주의 지켜줘 고맙다’ 인사
우리의 희생 헛되지 않아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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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는 순간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머리에 피를 쏟으며 죽어가던 제 또래들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부상자회)에서 만난 장성암(66·사진) 서울지부장은 “그날 저녁 계엄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해 거동이 불편한 장 씨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차를 몰고 나가 서강대교에 주차하고 국회까지 걸어갔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 계엄군과 장갑차의 국회 진입을 몸을 던져 막았다. 같은 시각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인 최필호(66) 씨는 과거 트라우마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비상계엄 네 글자를 보는 순간 몸서리가 쳐지면서 그날의 광주가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건 부상자회 소속 김영산(64) 씨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있던 세 사람은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군이 휘두르는 진압봉과 개머리판으로 맞은 뒤 구금돼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당시 대학 기악과 진학을 준비하던 고3 학생 장 씨는 첼로 레슨을 받으러 순천에서 광주로 왔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계엄군이 다짜고짜 쫓아오더니 손을 뒤로 묶고 군홧발로 수십 차례 얼굴을 가격했다”며 “외투가 피에 흥건히 젖었고 기절 후 꼬박 4일이 지난 후에야 의식을 찾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최 씨는 금남로에서 시위하다 완전무장한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최 씨는 “머리에서 피를 쏟는 여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몸을 피하던 중 계엄군에게 잡혀 5일 동안 구타당했다”며 “수십 년 동안 쫓기고 맞는 꿈을 셀 수 없이 꿨다”고 말했다. 전남대 1학년생이었던 김 씨는 “시위대 맨 앞에 서 있다가 잡혀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찍히고 종일 삼거리에 묶여 있었다”고 말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 사태를 맞은 세 사람은 지난 7일 탄핵 촛불집회가 열리는 국회 앞에서 다시 만났다. 김 씨는 “그날의 광주는 완벽히 통제돼 내부 상황을 외부에 알릴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언론뿐 아니라 시민들이 SNS로 생중계하면서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덕분에 시민들이 빠르게 국회 앞으로 모였고, 현장에 있던 계엄군도 수백, 수천 개의 카메라 앞에서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젊은 세대, 특히 2030 여성들이 대거 참석해 집회를 주도한 것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최 씨는 “머리에 ‘부상자회’ 띠를 두르고 있는 우리를 보고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데 과거의 고통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도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장 씨는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될 때까지 매일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