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구름처럼 모인 인파 8일 부산 서면 젊음의거리 일대에서 열린 정권 퇴진 집회에서 1만여 명이 촛불과 응원봉을 높이 들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K-팝 문화가 바꾼 집회 풍경

팬덤문화 익숙한 2030이 주도
커피·김밥 등 선결제 ‘나눔’도

‘K-팝 문화’가 집회·시위 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팬덤 문화를 이끄는 2030 여성들이 ‘탄핵 촛불집회’의 주축을 이루면서 과거와는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면서다. K-팝 가수의 콘서트장을 물들였던 응원봉들은 ‘꺼지지 않는 촛불’로 활용됐고, ‘최애(자신이 응원하는 연예인)’ 이름으로 현장 스태프·팬들에게 보내던 ‘커피차 문화’는 집회 참여자들에게 무료 간식을 나누는 모습으로 발현됐다.

지난 8일 오후 6시쯤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촛불집회에서 만난 김나현(26) 씨는 K-팝 그룹 ‘EXO(엑소)’의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김 씨는 “각기 다른 응원봉들이 빛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 좋아하는 스타는 다를지라도 하나로 뭉치고 있음을 느꼈다”며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건 K-팝 팬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이날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오모(26) 씨도 “응원봉은 발광력도 좋고 배터리도 오래 가 집회에 최적화된 물건임을 깨달았다”며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밝은 빛을 통해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SNS 등에서는 ‘○○○(상호명)에 커피 50잔을 결제해뒀으니 ○○○(연예인 이름)을 대고 찾아가라’ 등의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나눔 항목은 커피, 김밥, 만두 등 다양했다. 집회 참가자 A 씨는 “개인 사정 때문에 현장에 못 오는 팬들이 ‘최애’ 이름으로 다른 팬들에게 커피나 음식을 보내는 건 오래된 문화”라고 말했다. 김 씨도 “콘서트나 공개방송 대기 줄에서 물, 초코바 등을 서로 나누는 문화는 예전부터 있었다”며 “K-팝의 나눔 문화가 이번 집회에서 간식·커피 선결제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K-팝 가요가 ‘운동가’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가요 사이에서 로제의 ‘아파트’,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등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왔다. 시민 임모(40) 씨는 “2008년 광우병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등에 모두 참여했었는데,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며 “SNS나 팬덤 문화에 익숙한 2030 세대들이 보다 경쾌하고 성숙한 집회시위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촛불 대체재로 쓰이는 응원봉 거래도 급증하고 있다. 이날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한 시간 사이에 응원봉을 판매하는 게시글이 약 60개가 올라오기도 했다. 집회 참가 이후 응원봉에 관심이 생겼다는 노모(58) 씨는 “내가 가지고 있던 LED 촛불에 비해 발광력도 뛰어나고 배터리도 오래간다고 해 하나 구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