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 문화부장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이후 대한민국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 주말 사이 실로 엄청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무지 뉴스특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엄 선포와 해제, 탄핵소추 표결과 불성립, 성난 시민의 함성, 대통령의 사과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질서 있는 퇴진’ 주장 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 편의 드라마가 시시각각으로 펼쳐졌다. 정말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탄식과 함께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앞으로의 정국도 온통 불확실성투성이다.

그래도 한 줄기 빛이 보인다.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는 한강 작가에 관한 소식이다. 계엄 후폭풍이 휘몰아치는 도중이던 지난 6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 아카데미에서는 한 작가의 글로벌 기자회견이 열렸다. 가장 먼저 관심을 끈 대목은 역시 동 시간대에 벌어진 한국의 계엄 사태에 관한 언급이었다. 한 작가는 “2024년 계엄 상황의 전개는 큰 충격”이라며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진정 어린 소망. 빛나야 할 자리에서 저런 답변을 해야 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위안이 됐다.

한동훈 대표-한덕수 총리가 긴급히 담화를 발표하던 시간에는 ‘귀로 듣는 문학’으로 불리는 수상자 강연이 진행됐다. 역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한 작가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어쩌면 내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고백했다. 현 정치권에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하이라이트인 시상식에서 보여줄 모습도 기대된다. 한 작가는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에게서 노벨상 메달을 받게 된다. 아마 이 장면에 전 세계가 또 한 번 박수 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한국 국민으로선 흐뭇한 일이라 자랑스럽다.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잠시라도 어루만져 줄 것 같다.

윤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은, 대통령실이 그간 그토록 강조하던 ‘국격’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계엄 사태 이후 사흘간 주식시장에선 시가총액 수십조 원이 증발했고, 해외 비즈니스 리더들은 예정했던 방한 일정을 취소했다. 일부 국가에선 한국을 ‘여행 위험국’으로 분류했다. 한 작가를 비롯해 K-문학이 그간 공들여 쌓아 올린 탑,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 K-팝이 오랜 기간 이끌어온 한국 문화의 매력, 김치와 불고기 등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K-푸드의 잠재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 정신이 살아 있고,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비록 아슬아슬했지만 시스템이 가동됐고, 모두가 한마음이었으며, 45년 전과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초(超)연결된 시민의 힘이었다.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용기 있게 나서면서 강제와 억압, 불법과 야만을 물리쳤다. 아무리 해도 K-민주주의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한 작가와 함께 영광의 시간도 다시 다가온다. 계엄의 충격이 노벨상의 감격으로 빨리 치환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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