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엔 온갖 사연을 가진 ‘문제적’ 도전자들이 등장한다. 방송은 끝까지 버틴 이들에게 식당 개업을 약속한다. ENA 제공

■ ‘백종원의 레미제라블’ 휴머니즘·선정성 사이 줄타기

이글스 방출 투수·망한 아이돌…
실패한 청년들에 도전 과제 주고
끝까지 버티면 가게 오픈 기회줘

첫회 소년범 출신 참가자로 시끌
경쟁하는 메인 무대는 감옥 같아
고통 소비 ‘불행 포르노’ 지적도

‘알코올 중독’ ‘패륜아’ ‘범죄자’ ‘조폭’까지. 심상치 않은 사연을 가진 도전자 20인이 ‘새로 태어나겠다’며 하나둘 모인다. 지난달 30일 ENA를 통해 처음 방송된 새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레미제라블’(넷플릭스·웨이브·쿠팡플레이 등 방영)은 현시대의 ‘장발장’을 찾아 갱생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 하지만 첫 회부터 소년범 출신 참가자로 논란에 휘말렸다.

‘레미제라블’은 도 넘은 ‘사연 팔이’일까 휴머니즘 갱생 프로젝트일까. 방송이 한 인간의 구원과 탈락을 결정하는 심판자가 될 수 있을까.

도전자 20인은 하나같이 절박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다. ‘100일간의 인생 역전 프로젝트’라는 소개처럼 이들은 100일 동안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위시한 심사위원들이 내린 미션을 끈기와 의지로 수행하며 자신이 다시 태어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끝까지 버틴 생존자에겐 가게를 열어준다. 한경훈 PD는 “우리 사회가 실패한 청년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에 박하지 않은가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관찰과 응원이 주목적이었던 이제까지의 ‘사연 팔이’ 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문제적 인물들의 갱생까지 방송에서 주도한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상황이 어려운 요식업 종사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다시금 장사할 기회를 주는 건 ‘골목식당’ 등에서 백종원이 줄곧 해왔고, 가장 잘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다만 ‘레미제라블’은 참가자들의 사연이 극도로 심각하단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가진다.

도전자들 각자의 사연은 ‘꼬리표’란 형식으로 소개된다. ‘이글스 방출 투수’ ‘망한 아이돌’ 등 도전자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떼어내고 싶은 단어로 구성됐다. 방송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된 ‘9호 처분 소년 절도범’(7번 김동준)은 생계를 위해 차량 절도를 했다며 자신의 사연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그의 말대로면 분명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피해자가 있는 범죄행위에 대해 당사자의 일방적인 설명만 소개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조폭 아빠’ ‘보호소년’ 등 자격 시비가 일어날 만한 꼬리표를 가진 도전자들의 소개가 남아 있다는 점은 흥행과 논란을 함께 내포한 ‘양날의 검’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왼쪽부터 백종원·데이비드 리·임태훈·윤남노 심사위원. ENA 제공

1화에서 도전자들은 수없이 많은 양파를 까고, 3㎜ 간격으로 채를 썰어야 한다. 양파를 보지 않고서도 칼질하는 숙련자가 있는가 하면, 칼질이 서툴러 억지로 양파 껍질을 까는 요리 초보도 보인다. 갖가지 불행한 사연을 가진 도전자들 중 1회에선 특히 ‘태어나서 불편한 아이’(15번 유지민)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그는 칼질을 하다 손을 벴지만 ‘기회를 잃을까봐’ 응급처치도 하지 않고 라텍스 장갑을 낀 채 계속 양파를 썰어나간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도전자들의 발버둥은 분명 흥미롭지만,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다. 도전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불행 포르노’란 지적을 벗어나긴 어렵다.

제작진도 자극적 소재를 한껏 활용하는 모습이다. 인상이 강인해 보이는 도전자를 가장 먼저 등장시키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유도한다. 도전자들의 사연 소개에도 적극적이다. 누가 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는 듯하다. 이들이 앞으로 먹고 자며 경쟁할 공간은 흡사 감옥 같다.

여러모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스핀오프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심사위원이었던 백종원을 중심으로 해당 프로그램 출연자였던 ‘요리하는 돌아이’(윤남노), ‘철가방 요리사’(임태훈), ‘고기깡패’(데이비드 리) 등이 멘토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향후 도전자들의 부적절한 이력이 드러날 경우 프로그램의 윤리성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일반인 출연자의 부적절한 과거 이력 문제는 ‘나는 솔로’ ‘흑백요리사’ 등 일반인 출연 예능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문제다. 제작진이 일반인 출연자에 대해 검증하는 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레미제라블’의 경우 문제 이력을 처음부터 공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회를 거듭할수록 논란이 희석될 여지도 있다. 이미 중화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포함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동 지역 등 21개국에 수출됐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