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우리나라 외교는 상대국의 언행에 일희일비하는 고질병이 있다. 미국 대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통화 때 한국과의 조선업 협력 언급에 모두가 고무됐다. 지난 8일에는 중국의 관광비자 면제와 차기 주한 중국대사 지명자의 직급 격상을 관계 개선을 바라는 중국의 의사로 확대해석했다. 그러나 중국은 변한 게 없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주문한 요구 사항을 고수한다. 즉, 독립·자주적 의사결정, 한미동맹에 한·중 관계 복속 금지, 우리의 국익을 위해 제3국의 전략이익 훼손 금지 등이다. 이 요구 관철 없이 한·중 관계의 개선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지난 18일 윤 대통령은 브라질의 유력 일간지 ‘우 글로부’(O Globo)와 인터뷰에서, ‘미·중 양국은 우리에게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중국과 계속 소통하고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 중’이라고 한·중 관계에 의미를 부연했다. 자칫 미·중을 유사한 반열에 두고 줄타기하려 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익 중시 외교 전략은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안보·경제 협력 파트너를 찾다 보니 우연히 그런 나라들이 자유가치 민주주의 경향을 띠고 있었고, 국익 중시 차원에서 (중국과) 협력”하려는 대목이 오해를 증폭시켰다. 외교에서 가치가 수단일 수 없고, 우연이 없다. 특히 국익 중시 전략에서는.

비자 면제 결정은 중국의 경제 이익을 고려한 결과다. 침체된 관광·항공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50여 개국에 일괄 적용한 것이다. 차기 주한 중국대사의 직급 상승을 중국이 관계 개선 의사를 담은 ‘격상’ 조치로 과도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 더욱이 그가 중국 유엔 부대표란 점에 현혹되면 안 된다. 실은 그가 아프리카국(司) 출신이고 아프리카통으로 유엔에서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정책 차원에서 아프리카 회원국과의 관계 관리에 전념했을 것이다. 한반도 문제에는 문외한 인사라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희망하듯 중국은 아직 협력을 중시하지 않는다. 국제규범과 규칙을 무시하는 처사가 그 방증이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0 행정부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달성을 위한 시간이 없다. 그가 내각 지명을 서두르며 이들이 인수위에서 각자의 분야를 직접 이끌게 하려는 이유다.

트럼프는 방위비 분담금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한미동맹의 기능과 역할 조정, 중국과 대만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리 등 수많은 주문을 할 태세다. 그가 시간이 없듯 우리도 협상과 고민할 시간이 없다. 유럽연합(EU), 캐나다와 일본 등이 올 초부터 트럼프 2.0 TF를 꾸려 만전을 기한 배경이다.

이들에 비해 우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다. 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정리가 미비한 것이 단편적인 사례다. 전략적 모호성은 트럼프의 미국에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레버리지로 한미동맹과 한·중 관계를 ‘윈-윈’ 구조로 끌어내는 게 국익 중시 전략의 핵심이다. 여느 우방과 미국의 동맹처럼 중국에서의 경제 이익은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의 가치와 생활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의 발전과 번영 기회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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