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박빙 미국 대선이 채 20일도 남지 않았다. 여전히 어떤 자리든 첫 질문은 “누가 이길 것 같으냐”다. 한동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승리 가능성을 점쳤던 사람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름이 비등하게 들리거나 더 많이 거론된다. 트럼프의 상승세는 분명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의 가장 큰 근거는 ‘샤이 트럼프’의 존재다. 입을 꾹 닫고 있다가 투표장에서 트럼프를 찍음으로써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 대체로 저소득 백인들을 지칭한다고 설명하면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한 한국 인사는 “2016년에는 샤이 트럼프의 존재를 아예 놓치고 있었다. 8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들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게 워싱턴DC의 정서”라고 단언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의 승리를 예상하는 또 다른 관계자는 샤이 트럼프는 없다고 단언했다. 8년 전과 비교해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의 위상이 천지 차이로, 8년 전엔 백인 유권자들의 불만·분노가 수면 아래 가려져 있었다면 이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공식화됐다는 취지다. 보다 온건한 주장으로는, 도시 지역을 벗어나면 트럼프와 밴스(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적힌 팻말을 자랑스럽게 걸어둔 주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기성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불신이 여전해 갖은 보정 노력에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현실론’도 있다. 서로 다른 주장이 공유하는 지점도 있다. 여론조사상 박빙 대결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샤이 트럼프가 무시 못 할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대선 D-30일 즈음부터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 네바다주를 찾아 바닥 민심을 살폈다. 네바다의 70대 할머니는 “트럼프는 삶의 궤적에서 대통령의 자격을 증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조지아의 20대 청년은 “경제와 국경 문제는 트럼프가 더 잘 해결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트럼프 찍는 나를 비난하지 마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트럼프 지지를 부끄러워하는 유권자는 없었다. 오히려 8년 전에 이어 다시 우리가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의지가 엿보였고, ‘미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내 성급한 결론은 ‘샤이 트럼프는 없다’다. 정확히는, 더는 ‘샤이’(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피즘은 공화당의 주류가 됐다. 공화당이 곧 트럼프이고, 트럼프가 곧 공화당이다. 더 나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미국 우선주의’는 더는 숨겨야 할 가치도, 감춰야 할 욕망도 아니다. 오히려 망가진 미국을 바로잡는 애국시민의 역할이 됐다. 물론 ‘좌파 언론’ ‘부정한 여론조사’에 대한 적대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통계 그물망을 벗어날 수 있지만, 심리적인 ‘샤이 트럼프’의 존재는 사라졌다. 문제는, 당당해진 샤이 트럼프의 존재가 승리할지, 과연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다. 미국의 선택이 20일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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