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경고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면서 핵 사용 원칙을 담은 핵 교리를 개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타스통신 연합뉴스

■ 러시아 핵 교리 개정

우크라, 장거리 무기 승인 요청속
푸틴 ‘핵 사용 기준 완화’ 돌파구
“핵보유국 지원받아 러 공격하면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교리 개정 선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거리 무기 사용 승인을 고려 중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된다. 전쟁이 3년 가까이 이어지는 상황에 러시아 본토 타격까지 가해질 경우 정치적 생명이 위험하다고 보고 핵 카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통제 조약인 ‘뉴스타트’ 효력 중지 선언,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 등에 이어 서방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핵 위험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푸틴 대통령은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는 경우 이를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핵 교리 개정을 선언했다. 비핵보유국이 재래식 무기를 쓰더라도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공격이라면 이 국가들을 모두 공격자로 여겨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러시아 핵 교리는 적의 핵 공격이나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재래식 무기 공격을 받을 때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또 푸틴 대통령은 공중 및 우주에서 러시아 국경 안으로 대규모 공격을 개시한다는 점이 신뢰할 만한 정보로 감지되면 핵무기 사용이 고려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사실상 서방 핵보유국인 미국·영국·프랑스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무기 사용을 허가하면 핵 보복을 받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러시아는 수차례 서방 무기가 자국을 타격할 땐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에이태큼스(사거리 300㎞)와 영국·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스톰섀도(사거리 241㎞)를 보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러시아가 더 이상 재래식 무기로 우크라이나를 패배시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속도에 제동이 걸리고, 전쟁이 계속되자 지난해부터 핵 위협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2월 국정 연설에서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이어 같은 해 6월 맹방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다. 러시아가 해외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해외 핵무기의 국내 이전이 완료된 1996년 이후 27년 만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이날 핵 교리 개정 사항에 벨라루스에 대한 공격도 핵무기 대응을 고려할 요건으로 넣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변경할 교리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공격이 발생하면 핵무기 사용 권리를 가진다는 뜻도 담긴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는 보유한 핵무기 4380기 중 1710기는 3대 핵전력(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 폭격기)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의 마을 2곳을 점령하며 동부 점령지를 넓혔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