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우리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전기 소비도 급증한다. 최근 지인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의아한 풍경을 목격했다. 그 식당에서는 고기를 숯이 아닌 인덕션으로 구웠다. 비용과 비효율 대신 전기의 편리함과 깨끗함을 택한 것이다. 요즘 같은 무더위를 에어컨 없이 견디기란 절대로 쉽지 않다.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6도에 육박했던 지난 12일 오후 2∼3시 평균 전력 총수요 추계치가 102.3GW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산업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철강·정유 등 국가 주력 산업은 전기 다소비 산업이다.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도 전기를 엄청나게 소비한다. 지난 5월 말에 발표된 ‘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실무안(案)에서는, AI 영향으로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30년에는 2023년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2038년 목표 전력 수요는 129.3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는 우리 삶과 산업의 근간이다. 이 전기를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보내기 위해서는 전력망이 필요하다. 전력계통은 생산 설비와 전력망 등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안정적인 전기 공급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전력망 확충이 제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바퀴들을 축으로 연결해 동력을 전달해야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전력설비가 있어도 소비처와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면 전기를 공급할 수가 없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로 인한 출력 변동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도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설비 못잖게 전력망이 제때에, 그리고 제대로 확충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력망을 확충하기란 쉽지가 않다. 전력망 사업은 선로가 지나가는 토지의 가치 하락과 경관 훼손 등 재산권 침해, 고압 송전탑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지역 주민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과 한국전력공사가 크게 맞부딪쳤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력망 사업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동의가 필수다. 이를 위해 차별화된 보상과 지원은 물론 사업 인허가 절차 개선, 전방위적인 지원 체계 구축 등을 담은 특별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전력망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었지만, 정치권의 관심 부족으로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제22대 국회 회기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6월 이 특별법이 재발의됐다.

이 특별법은 민생 법안이다. 국민 생활과 경제에 직결되는 전기 공급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국민의 삶의 질 하락은 물론 산업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전기를 제때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전력망을 사전에 계획하고 구축해 놔야 한다. 이 특별법 처리를 더 늦추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협의 중인 ‘여야정 민생협의체’는 여야 민생 협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 협의체를 통해 시급한 민생 법안을 처리한다면 말이다. 그중에서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등 전기 생산·이용에 관한 특별법 처리는 화급하다. 전기는 민생 중에서도 기본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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