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시설 있는 54곳 중
21곳에만 ‘질식소화 덮개’ 설치
전용소화기 구비한곳은 10곳뿐

전문가 “화재 확산 막기 위해
구획 작업·감시 장치 급선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전기차가 7만 대를 넘어서는 등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지만, 서울 시내 공영주차장의 전기차 화재 안전시설 구축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시 진화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화재 초기 진압과 확산 방지를 위한 소방시설 설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된 서울 공영주차장 54개소 중 화재 안전시설(화재 감시설비 포함)이 설치된 곳은 22개소(41%)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게다가 22개소 중 21개소에는 질식소화 덮개(산소를 차단해 불을 끌 수 있도록 내열성이 좋은 천으로 만들어진 덮개)가 갖춰져 있지만, 전기차 전용 소화기까지 구비한 곳은 10개소에 불과했다. 또 화재 발생 초기에 감지할 수 있는 열화상 CCTV나 불꽃감지 센서 등 화재 감시설비는 12개소에만 설치된 것으로 조사됐다. 차체가 커서 질식소화 덮개를 활용할 수 없는 버스 전용 공영주차장인 중구 예장동 남산예장주차장에는 열화상 CCTV 외에 설치된 설비가 없었다.

시는 지난해 10월 ‘서울시 전기자동차 전용주차구역의 화재 예방 및 안전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올해 6월까지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된 공영주차장을 대상으로 화재 안전시설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8개월 동안 화재 안전시설이 추가로 설치된 곳은 4개소에 그쳤다. 이에 대해 시는 “질식소화 덮개 설치가 의무사항인 곳에는 모두 질식소화 덮개를 설치했다”며 “화재 파급 피해가 낮은 야외 평면주차장 형태인 곳에는 화재 안전시설을 설치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23명의 희생자를 낸 경기 화성시 1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배터리 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전기차 충전 구역에 화재 초기 진압 시설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나면 온도가 1000도까지 급격히 오르는 ‘배터리 열폭주’ 현상이 발생하므로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 화재 진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옆 차량이나 건물 등으로 옮아붙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구획 작업이 급선무”라며 “화재를 초기에 감지할 수 있는 화재 감시 장치 설치도 필수”라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야외 주차장의 위험도가 실내보다 떨어지기는 하지만, 야외 주차장이라도 구획 작업과 스프링클러 설치 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하면 질식소화 덮개를 활용하거나 물막이판을 이용한 수조를 활용해 꺼야 하는데 화재 초기 상태가 아니면 이런 방법들도 한계가 있다”면서 “소방대가 일찍 올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소방재난본부와 전기차 충전시설에 대한 안전시설 설치 관련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야외 주차장에도 화재 대응 설비를 점진적으로 설치해 나가겠다”고 해명했다.

이정민·이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