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CNN·BBC 등 캡처

인니 걸밴드 보이스 오브 바쩨쁘로뜨
글래드스톤베리 뮤직 페스티벌 초청
무슬림 사회에서 메탈음악하며 각광
탄압과 백안시 속 이뤄낸 성과 주목

올해 글래스톤베리 뮤직 페스티벌에서 오는 29일 공연에 나서는 인도네시아의 3인조 메탈 밴드인 보이스 오브 바쩨쁘로뜨(VOB·소음의 목소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히잡을 뒤집어 쓴 신실한 무슬림 여성 3명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콜드플레이, 두아리파, 한국의 세븐틴, 테일러 스위프트 못지 않는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CNN, BBC방송 등 외신들은 장문의 보도를 통해 이들 세 소녀를 조명했다. 락 음악 중에서도 메탈 음악에서 여성이, 그것도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보게 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그러나 이들 밴드는 유명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인 톰 모렐로가 "10번 연속으로 이들의 공연영상을 돌려봤다"고 밝힐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플라이는 엑스(구 트위터)에 "보이스 오브 바쩨프로트에 푹 빠졌다"라고 밝히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보컬 겸 기타 피르다 마르샤 쿠르니아는 초청을 받은 소감에 대해 "혼란스러웠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이곳에서 즐길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의 무대는 다를 것이며 인도네시아와 인도네시아 문화를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서부자바의 시골 마을에서 자란 보컬 마르시야와 드러머 유이스 시티 아이샤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이들은 중학교에서 ‘반항적인 행동’으로 상담 교사실에 불려가서 위디 라마와티를 만났다. 상담 교사가 듣던 헤비메탈에 푹 빠진 이들은 밴드를 결성했고, 이후 자신들의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통로로 음악을 택했다. 상담 교사인 에르사가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고, 이들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후 이들은 유튜브에서 수십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인스타에서도 각각 수십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도네시아의 대표 밴드로 꼽힌다.

물론 세속화된 국가라고 하지만 엄연히 무슬림 국가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에서 여성이 메탈 음악을 한다는 것에 반감도 많았다. 자신들이 다니던 무슬림 학교의 교장부터 용납하지 못해 이들은 자퇴해야 했고 가족들 중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악마의 음악을 그만하라’는 메모가 붙은 돌에 머리를 맞기도 했다고 이들은 술회했다. 메탈이 무슬림 가르침과 맞지 않으니 히잡을 벗으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무슬림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음악을 계속했다. 지난 2021년 발표된 싱글 ‘신이여, 음악을 연주하게 하소서’, 나 ‘공공재(가 아니야)’ 등의 가사에는 이들의 이 같은 소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내부는 물론 인근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등에서도 그들의 팬이 생겼고, 노벨상 수상자인 무슬림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또한 이들을 응원했다.

일각에선 이들의 부상이 오랜 기간 인도네시아에서 다져진 메탈 문화의 토대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1980년대부터 슬래시 메탈 장르가 큰 인기를 끌어왔다. 자카르타 예술대학의 공연예술학부 학장이자 자칭 메탈헤드인 프리 아리오 다마르는 "당시 자카르타에는 언더그라운드 메탈과 펑크 신이 번성했다"며 "토요일 밤에 시내의 펍이나 작은 공연장에 가면 메탈리카 커버를 연주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전통은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는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메탈 페스티벌인 해머소닉은 메가데스, 슬립낫, 데드 케네디 등 수년간 수많은 메탈 및 하드록 거물급 뮤지션들을 초청해 왔다. 1993년 메탈리카의 인도네시아 공연 때는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공연장 문을 부수고 차량과 상점을 약탈하는 ‘폭동’을 일으킨 바 있으며, 이 때문에 한동안 메탈리카의 인도네시아 공연이 불발되기도 했지만, 20년 뒤엔 2013년엔 당시 자카르타 시장이었던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의 주선으로 다시 역사적인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헤머소닉의 CEO인 라벨 주나디는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메탈 팬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헤비메탈 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