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도쿄 시부야의 디저트 레스토랑 ‘아즈키토코오리’의 일본식 빙수 메뉴 ‘패션프루트 & 시부스트’. 오른쪽 사진은 빙수에 불도장을 찍는 모습.

■ 빵요정의 세상의 모든 디저트 - 도쿄 ‘아즈키토코오리’

장맛비와 무더위가 번갈아 지나가며 여름을 느끼게 해줍니다. 벌써부터 수박, 초당 옥수수, 애플 망고 등 여름의 맛을 담뿍 담아 만든 빙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최애 빙수는 과연 어떤 맛일까요?

저는 유독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는 빙수가 있습니다. 직접 쑨 팥으로 만든 단팥물 가득한 찐빵으로 유명한 경남 진주 ‘수복 빵집’의 팥빙수입니다. 얼음 덩어리가 눈에 보일 정도로 거칠게 간 얼음 위에 계피 시럽과 팥을 올린 간단한 설계의 구성입니다만, 그 간결한 구성이 만들어내는 청량함이 있습니다. 우유와 생크림의 풍미가 더해진 고급스러운 요즘 빙수와는 다른 방향성의 맛이어서 더더욱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기사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일본에서 맛보는 가키고오리(잘게 간 얼음 위에 시럽을 뿌리는 일본식 빙수)와 한국의 빙수는 비슷하고도 다른 지향점들이 존재합니다. 두 가지를 비교하며 즐기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보통 일본의 가키고오리는 말 그대로 ‘깎는다’는 동사의 ‘가쿠’와 ‘얼음’을 의미하는 ‘고오리’의 결합어입니다. 여러 가지 색소가 더해진 시럽을 골고루 뿌린 화려한 색감의 빙수 사진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도 하와이나 일본의 레트로 빙수로 만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일본에서도 요즘 비주얼과 구성이 점점 진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 방문한 일본 도쿄(東京)의 ‘아즈키토코오리(Azuki to Kouri)’는 팥과 얼음이라는 의미의 이름의 작은 가키고오리 바입니다. 미쉐린 2스타를 자랑하는 프로리레쥬(Florilege) 레스토랑에서 디저트 셰프로 근무했던 미호 호리오 씨가 이곳의 오너 셰프입니다.

이곳은 닛코(日光) 지역에서 수급한 얼음을 사용하는데, 따로 우유나 크림을 섞어 얼리지 않은 것인데도 얼음의 결을 깎으면 마치 눈꽃빙수처럼 포근하게 겹겹이 그릇에 내려앉아 쌓이는 비주얼이 일품입니다. 섬세한 기교를 뽐냈던 디저트 셰프답게 고급 우유는 물론 제철의 머위나 벚꽃 등의 특별한 재료들을 사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보통 5~6가지의 빙수와 특별한 프렌치토스트를 메뉴로 준비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맛을 다 보고 싶었지만 여행 중 배앓이로 고생할 수는 없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대표메뉴 중 하나인 시부스트 크림(Chiboust cream)이 올라간 패션프루트와 시부스트 빙수를 주문했습니다. 시부스트 크림은 보통 이탈리안 머랭과 커스터드 크림을 섞어 만든 맛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커스터드 크림의 묵직한 보디감에 공기를 불어넣은 듯 이탈리안 머랭을 더해 볼륨감을 최대화시켰다고 상상하면 정확합니다.

그릇의 맨 아래에는 라임즙과 민트 시럽으로 모히토의 풍미를 담아내어 청량함을 돋보이게 하고, 그 위에 얹은 얼음 사이사이에 부드러운 우유 젤리와 크림을 넣고 식감을 위한 파이지 조각을 더합니다. 부드러운 시부스트 크림에 설탕을 끼얹고 강력한 화력을 가진 작은 불도장으로 눈앞에서 마지막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크렘 브륄레를 연상시키는 가키고오리가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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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눈앞에서 얼음을 갈아 켜켜이 구성을 하는 과정은 간단해 보일 수 있겠지만 요소 하나하나를 미리 준비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꼼꼼한 설계의 맛입니다. 이렇듯 전문 기술자가 만들어 내는 섬세한 맛의 가키고오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여름의 즐거운 외출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Instagram.com/azukitokouri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