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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그립습니다

집보다 큰 화단의 어여쁜 꽃처럼… 당신은 환하게 가셨습니다

  • 입력 2024-06-19 09:12
  • 수정 2024-06-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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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어머니(오른쪽)와 언니(가운데), 필자가 집에서 함께 찍은 사진.



■ 그립습니다 - 나의 어머니 (임종문·1926~2024)

올봄은 유난히 힘들었다. 지난 사월 분분히 날리던 산벚꽃을 따라 어머니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

개심사 절을 자주 찾아가셨던 인연으로 불교 의식으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운 아미산자락 정토사에서 유월 초 49재를 끝으로 이승의 인연을 끊고 홀연히 떠나셨다.

텅 비어 있지만 어머니의 숨결이 그대로인 집에 형제들이 모여 유품을 정리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 눈길을 멎게 한 것은 편지였다.

객지 나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자식들이 명절이나 생신날 또는 어버이날에 보내온 편지를 50여 년 가까이 곁에 품고 계셨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새삼 돌이켜보면서 편지 마지막에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쓴 말을 제일 많이 한 자식이 나였다. 그렇다. 지금도 가장 힘든 것이 끝까지 병든 어머니를 손수 보살펴 드리지 못해 너무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

올해로 백수(白壽)이신 어머니를 위해 기쁘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시집을 엮고 있었다. 출판사에 보내드리고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견디기 힘드셨는지 아무도 모르게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시집은 어머니 생신날에 맞춰 유월 초이튿날에 발행되었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꾼이었다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보다
더 지독했을 삶

밥상머리에 발라주던
하얀 생선뼈처럼 야위어

돌돌 말린 가슴으로
가느다란 숨길 고요히
따라가다 돌아서길 몇 밤

말문도 막힌 고통을 견디며
해결되지 않는 병마에 맞서
점점 물고기 화석이 되어 간다
-시 ‘물고기 화석’ 전문-

시집 제목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치열한 삶을 사셨다. 한시도 허투루 사신 적이 없다. 노년에 가만히 있으면 병이 더 난다면서 텃밭을 일구고 봄이면 나물을 다듬어 서산장에 내다 파시곤 하셨다. 당진 오일장도 있었지만, 안 가셨다. 행여 자식들한테 누가 될지 싶어 집에서 좀 멀긴 하나 서산으로 다니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라면 그렇게 벌벌 떨고 끔찍이도 아끼셨다.

양양에서 당진은 동쪽에서 서쪽 끝이다. 찾아뵈면 강원도 딸이 왔다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몸으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반기셨다. 노래는 잘 안 하셨지만, 흥이 많아 뵐 때마다 기분 좋게 하는 마법이 있으셨다.

백수를 맞으면서 평생에 병원이라면 딱 하루 입원하셨던 기억 말고는 없으신 분이다. 그러면서 일세기 동안 그 흔한 선글라스 끼고 친구분들이랑 여행 한번 못하셨다. 옆구리 한편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집보다 큰 화단이 있을 정도도 꽃을 무척 좋아하셨다. 처마 밑으로는 따뜻하게 키워야 하는 화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 사십여 년 묵은 거대한 몸집을 지닌 금호선인장이 있었다.

두 해 전 가을이었다. 갑자기 추워지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얼려 죽일 수 있다고 걱정이었다. 방으로 미리 들여놓자, 하시니 뒤뚱거리는 몸을 일으켜 맨 위의 부분을 뚝 잘라 게으른 너도 키울 수 있다며 갖다 키우라고 주셨다.

그 선인장은 어머니가 가신 줄도 모르고 올해 꽃을 피워냈다. 천사가 나팔을 불며 내려오듯 환하게 피었다. 난 어머니가 오신 듯이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가르쳐 주시고 백수를 누리시며 떠날 때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간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셨다.

병마와 싸우며 힘드셨을 텐데 떠나시면서까지 의연한 당신의 모습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홀로 가시는 길을 보고도 못 본 척 혼자 돌아서야 했으니 어머니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막내딸 방순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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