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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학교이고 평생 배워야한다” … 당신의 가르침 아직 생생

  • 입력 2024-06-0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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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내가 1971년 전주중앙국민학교 1학년 첫 봄 소풍을 갔을 때 아버지(왼쪽)가 직접 사진기를 가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그립습니다 - 나의 아버지 민완기(1933~2023)

아버지가 떠나신 지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간다. 누군가 ‘그리움이란, 물 위에 떠 있는 달빛과 같아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을 더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글을 쓰기에 앞서 내 주변 분들에게 먼저 고백과 용서를 구하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장례식장을 다녔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가 80대 중반을 넘어서면 상주에게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애써 위로한답시고 참 쉽게도 던졌다. ‘아픔 없는 좋은 세상으로 가셨을 테니 이제는 훌훌 털고 사시라’고도 말했다. 구순을 넘게 사셨던 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쓰는 지금, 쉽게 던졌던 말들이 얼마나 가족 당사자에게는 상처를 주는 말이고 위로가 안 되는 말인지 뒤늦게 깨닫는다.

누군가 장례식장에서 내게 말했다. ‘90 평생 큰 병치레 없이 사시다가 자식들의 임종 의식을 받으며 가셨으니 호상이라고….’ 세상은 역시 인과응보다. 스마트폰 속 사진을 넘기다가 문득 발견하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이제는 “별일 없냐? 건강해라”라는 전화기 속 너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끔 마음이 무너진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아버지는 땅과 농부의 땀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방학 때면 항상 우리 삼 형제와 사촌 형제 모두를 동원해 큰아버지 밭에서 노력봉사를 하게 했다.



지나친 교육열의 표현인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바짓바람’의 주인공이셨다. 고등학교 학업도 제대로 마치시지 못하고 6·25 참전 용사로 복무하시다가 1959년 말, 군인들 세상이 오기 직전 장교로 제대하신 아버지는 자식 교육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셨다.

당신이 갑자기 기운 가세와 참전으로 고등교육의 꿈을 못 이룬 것이 한이셨는지 평생 아들 삼 형제의 교육만큼은 아무리 힘든 형편 속에서도 직접 챙기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항상 시골에서 유학 온 고등학생이나 교대생들을 입주형 가정교사로 모셨다.

얼마 전 수십 년 만에 연락이 닿은 가정교사 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모시는 자리에서 그분이 말씀하셨다. “육사 진학을 준비하던 시절 선생님 소개로 너희 집에서 숙식하며 지냈는데, 부친께서 어린 내게 말을 놓지 않으시고 꼭 너희들에게도 ‘선생님’이라고 존대하라고 강조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이는 평생 군인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부하들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으려는 태도의 바탕이 됐다”고 기억하셨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아버지는 친구분들을 집에 초대해 자주 식사를 하셨다. 사진 속 TV 앞에 아버지와 나의 1969년 모습이다.



고교 시절 방황하던 나를 사랑의 매로 다스리신 담임선생님께 오히려 고맙다며 전 학년 선생님들을 집으로 모셔서 ‘내 자식을 더 엄하게 가르쳐 달라’고 감사 잔치(?)를 벌인 일화는 고교 입학 40주년 기념식 때 만난 선생님께 직접 들은 얘기다. 무엇보다 아버지께 감사한 것은 ‘얼리어답터’라는 디지털 DNA를 물려주신 일이다. 집안 사정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 우리 집에는 유독 최첨단 가전제품들이 많았다. 아폴로 11호 달 착륙 때는 TV 생중계를 보기 위해 우리 집 마당에 수십 명의 동네 주민이 몰려들었다. 카메라, 전축, 녹음기 등등 당시에는 보기 힘든 제품들이 어릴 적 나의 장난감이었다. 비록 땅 한 평 안 물려주시고 오히려 친척 보증 잘못 서주신 덕분에 한정승인 유산상속 포기서를 써야 했지만, 해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박람회 CES에 꾸준하게 다녀와서 외부 강연과 기고를 하는 것도 아버지의 산교육 덕분이다.

술 한잔하시고 얼큰하게 취하시면 평소 본인의 교육철학으로 늘 자식들에게 강조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인생학교(人生學敎), 만년학도(萬年學徒), 수학종신(修學終身), 사즉졸업(死卽卒業)’. 인생은 학교이고 우리는 늘 학생이다. 평생 배워야 하고 죽어서야 졸업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 말씀처럼 평생 스스로 인생 속에서 배우셨고 자식들에게 삶으로 보여주셨고 죽어서야 배움을 멈추셨다. 그래서 6월의 아침에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고 그립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아들 민경중(한국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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