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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히든 챔피언’ - 화성 남양성모성지

마리오 보타 등 건축거장 손닿아
대성당 내 성화·십자가상 눈길
호젓한 산책길엔 수목 우거져

화성=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150여 년 전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었던 곳이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경기 화성시 남양읍 일원에 자리한 남양성모성지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처형을 당했던 이곳은 1983년 들어서야 순교 성지로서 성역화가 진행돼 1991년 10월 7일 국내 최초로 성모 마리아 성지로 선포됐다. 예전에는 야트막한 구릉과 논두렁뿐이었던 이곳은 국내외 저명 건축가들의 헌신 속에 서서히 모습을 바꿔 지금은 순례자는 물론 교인이 아닌 이들도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성모마리아 대성당(사진)이다.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가 건축을 주도한 이 건물은 기능적 완성도는 물론 미학적으로도 두루 인정을 받고 있다. 1층 소성당에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 조각상이 걸려 있다. 보타가 성당에 헌납한 것이다. 허리에 천 한 장만 두른 나체로 팔을 벌리고 손발에 못이 박힌 채 고개를 떨군 형상의 작품은 50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생동감이 있다.

2층 대성당에는 ‘20세기의 미켈란젤로’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작가 줄리아노 반지가 그린 성화 2점이 걸려 있다. 하나는 천사가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수태고지’가 묘사돼 있고, 나머지는 예수와 12명의 제자가 등장하는 ‘최후의 만찬’이다. 제단 중앙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상 역시 반지의 작품이다.

성당은 종교의식은 물론 문화예술 공연도 열릴 수 있도록 음향의 공명에 중점을 두고 설계됐다. 현악기의 울림통처럼 누군가 말을 하거나 악기가 연주되면 울림이 장내에 고루 퍼지게 했다. 천장은 여러 아치가 중첩된 주름 막과 같은 형태다. 각 주름골을 따라 줄지어 난 수백 개의 작은 창은 장내에 햇빛이 고루 들도록 했다.

성지에는 호젓한 분위기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많다. 성당 앞으로 뻗어 나가는 오솔길에는 다양한 수종의 수목이 우거져 있다. 오솔길 옆에는 3.5∼5m마다 성인 남성 한 아름 정도 크기의 화강암으로 된 묵주 알이 놓여 있다. 성지를 휘도는 대부분의 오솔길이 거대한 묵주인 셈이다. 성지 안에는 프리츠커상(2009년) 수상자인 페터 춤토어가 설계한 신도들의 공간인 ‘티 채플(Tea Chapel)’과 승효상 건축가가 참여한 ‘순교자의 언덕’도 건립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