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경찰병원도 비상 가동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는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을 찾은 환자가 응급 진료를 받기 위해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 의사 이탈에 환자들 ‘패닉’

응급환자 뺑뺑이 등 진료대란
정부, 軍병원 12곳 비상 개방
“림프종 老母 7시간 대기” 울분

접수된 피해사례 100건 육박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의존도가 50% 수준인 전국 주요 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가 ‘전공의 이탈’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응급환자 뺑뺑이’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비상진료체계의 일환으로 전국 12개 군병원을 민간인에게 개방해 응급환자를 받고 있지만, 이들마저도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한계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공의 파업 이틀째인 21일 응급환자가 종합병원 응급실로부터 ‘전공의 부재로 진료 불가’라는 말을 듣고 다른 병원으로 ‘뺑뺑이’를 돌거나, 응급실 내 진료 시간이 길어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한 환자 가족은 “아들이 복통이 심해 새벽 4시에 응급실을 찾았는데 아직까지 진료를 못 받고 있다”며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전날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이모(34) 씨는 혈액암 일종인 림프종으로 투병하는 노모(72)가 고열과 심한 기침 증세를 보여 7시간 동안 3곳의 병원을 돌았음에도 응급 치료를 받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 씨는 “20일 오전 6시 지역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해 오전 9시 아주대병원으로 갔지만 ‘파업으로 의사가 한 명밖에 없어 환자를 볼 수 없다’고 해 오전 10시 30분 서울성모병원으로 왔는데 의사 얼굴조차 못 보고 있다”며 “암 환자들은 열만 나도 응급실을 가야 하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이게 무슨 난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이날 ‘경증환자 방문 자제’ 안내문을 걸었다.

후두암, 뇌경색 등을 앓고 있는 84세 아버지가 낙상사고를 당해 응급 고관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는 딸 임모(50) 씨는 19일 밤부터 20일 오전까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경희대병원 등 5곳으로부터 “응급실에는 전공의만 있는데 전공의 파업으로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다행히 민간인에게 문을 연 국군수도병원에서 이날 오전 수술을 받게 됐다. 임 씨는 “잘못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환자가 계속 나올 텐데 파업을 언제까지 하는 건가 싶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정보제공(E-Gen)’ 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건국대병원 응급실은 ‘소아과 전공의 부재로 일부 중증소아환자 수용 불가’ ‘외과 응급수술 불가’ 등을 담은 공지를 띄웠다. 강동성심병원도 소아청소년과의 정규시간 외 응급실 진료와 산부인과 등 일부 과의 진료가 불가하다는 공지를 올렸다.

현재 전공의 업무 공백은 교수와 전문의가 채우고 있지만 파업이 길어지면 이들의 피로가 누적돼 위급한 중환자조차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실제 2020년 의사 파업 당시 부산에서 농약을 마신 40대 남성이 13개 병원 응급실로부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응급처치를 거절당하다 끝내 숨지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빅5 병원의 경우 응급실 업무의 60%를 전공의가 맡고 있다”며 “(응급실 마비는) 이미 예견된 사태”라고 설명했다.

수술·진료 취소·연기에 따른 환자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으로부터 오는 26일 예정된 갑상선암 수술이 5월로 연기됐다고 통보받은 한 환자는 “담당 교수가 2월 수술 일정을 다 취소하라고 했다더라”며 “수술 일정에 맞춰 빼놓은 일정은 어떻게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 센터에 접수된 피해사례는 20일 오후 6시 기준 총 92건으로 100건에 육박했다.

전수한·조율·노지운·김린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