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무료급식 받으러…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 어르신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지역명과 번호 등을 적어 놓은 종이박스 조각과 우산, 가방 등 소지품이 줄지어 놓여 있다. 문호남 기자

■ 문화재 주변 ‘낙후 심화’

역사보존지역 지정 개발 제한
탑골공원, 30년 넘은 건물 68%
노인들, 담벼락에 소변 보기도

“문화재 보존하며 인근 개발”
서울시, 정비 연구용역 진행

쾌청했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들어서니 노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곳곳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탑골공원이 도심 속 공원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담장 너머 모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 노인이 줄을 이었고 심지어 길바닥에 누워 있는 노인도 있었다. 탑골공원 담장과 맞닿은 그 골목을 지나는 것 자체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탑골공원에서 성희롱을 당한 사례도 인터넷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각종 안전장치가 문화재를 ‘박제화’해 주변부를 슬럼화, 문화재의 가치마저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를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은 ‘노인 전용’으로 여겨질 뿐 역사적 가치를 떠올리기 어렵지만 탑골공원은 국내 첫 도심 속 공원이자 1919년 일제에 항거하는 3·1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사적 제354호로 지정돼 있다. 탑골공원 인근이 낙후한 건 국가지정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인근 100m 이내가 일괄적으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설정돼 건축물 높이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보존지역 건축물의 68.4%는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다. 국가지정문화재 4개 중 1개가 몰려 있는 서울은 곳곳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인 셈이다. 동대문도 30년 이상 된 건축물이 76.5%에 이른다.

게다가 이들 지역은 도시계획 관련 규정까지 ‘이중 규제’를 받는다. 문화재 보호와 도시 계획 체계가 이원화돼 있는 데 따른 결과다. 탑골공원 인근 건물을 소유한 정원헌 씨는 “6·25전쟁 후 한국이 몹시 가난할 때 지어진 30∼40년 전 건물은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1층 바닥면적 비율)이 80∼90%였는데 지금은 녹지 확보와 개방감 등을 위해 약 60%로 낮아졌다”며 “그러면 높이를 올려야 하는데 높이 규제가 있으니 신축 건물을 짓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문화재 주변 건축물 높이 제한 완화를 요청했지만 문화재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시는 탑골공원, 동대문, 남대문, 덕수궁, 종묘 등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재를 보존·활용하면서도 주변부를 개발할 수 있는 새로운 정비 방안을 연구용역을 통해 처음으로 모색하고 있다.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청과 협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각종 문화재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 국가중요문화재인 도쿄역(東京驛)사 인근을 도심 업무·상업지구로 탈바꿈시킨 바 있다. 문화재 가치 퇴색을 막기 위해 저층부는 31m로 유지하고 상부는 고층 복합개발을 추진했다. 문화재 탓에 다 채우지 못한 용적률을 다른 건축물에 얹을 수 있는 용적률 이전 제도도 도입했다. 장재일 경일대 스마트경영학부 교수는 “한국도 도시 계획과 문화재 보호 간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정혜 기자 leaf@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