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에 마련된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 분향소에서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이 헌화하고 있다.연합뉴스

■ ‘소록천사’ 마가렛 선종 추모물결

“한센인 몸과 마음 치유에 전념
특혜·권위 없이 한평생 봉사”

소록도, 이번달 내내 추모기간
천주교·간호協도 분향소 마련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소록도 사람들의 엄마이자 누나, 언니였습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섬겼던 분이죠.”

천주교 광주대교구 나주 빛가람동 주임신부인 김연준 프란치스코 신부는 지난달 29일 오스트리아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한 ‘한센인의 어머니’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와 함께했던 소록도 생활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명절 인사를 전하기 위해 찾은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선종 소식을 접하고 부음을 알린 김 신부는 지난 3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깥에선 수녀님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마가렛은 스스로를 할매라고 불러주면 더 기뻐했다”면서 “특혜나 권위를 버리고 소록도 모두와 하나 된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이라고 밝혔다.

마가렛은 동료 마리안느 스퇴거(89)와 함께 1966년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초대로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찾아 39년간 한센인을 돌봤다. 구호단체 파견 간호사 기간을 마친 후에도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남아 한센인의 짓무른 몸을 맨손으로 소독하며 치료하고 재활 치료·의료시설 도입 등 한센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건강 악화로 더 이상 간호 봉사가 어렵게 되자 2005년 ‘섬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요양원에서 지냈다. 이 당시 소록도성당 보좌신부를 맡아 마가렛과 자주 소통했던 김 신부는 “보통 봉사를 하면서 자기만족을 찾기 마련이지만 마가렛은 그런 뜻 없이 한센인을 평생 섬기기만 했다”면서 “내 삶의 모델이었고, 10년 후 한센인들을 돕기 위해 소록도성당 주임신부를 자원해 다시 가게 된 것도 마가렛의 영향”이라고 했다.

김 신부는 “마가렛의 이야기는 사람이 남을 도울 때 가장 행복한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갈등이 증폭되는 시대에서도 인간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가렛이 떠난 것은 슬프지만 한편으론 평생 변함없는 모습을 지킨 채 하느님 곁으로 갔다는 점에서 부럽기도 하다”면서 “마가렛이 남긴 선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는 게 남은 우리들의 몫”이라고 했다.

마가렛의 선종 소식에 각계에선 그를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이날 오전 광주 임동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거행했고, 대한간호협회도 마가렛의 숭고한 봉사정신을 기려야 한다는 간호계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이날부터 닷새간 서울 중구 회관 앞과 고흥군 도양읍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 두 곳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10월 한 달을 마가렛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매일 소록도성당에서 추모 기도를 할 예정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소록도에서 한센인 간호 활동을 펼치던 시절의 고인 모습.김연준 신부 제공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