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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세뱃돈으로 만원을 주셨던… 미소가 그리운 선생님

  • 입력 2023-09-19 09:05
  • 수정 2023-09-1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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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김지하(왼쪽) 선생님과 내가 지난 2000년 경기 고양시 일산 자택 근처에서 담소를 나누던 모습. 선생님의 미소가 그립다.



■ 그립습니다 - 시인·사상가 김지하(1941∼2022)

지하 선생께서 떠나신 지 1년이 더 지났지만 일산이나 원주 부근을 지날 때면 늘 가슴 한구석이 메인다. 대학시절 그의 시는 목메어 갈구하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세배를 다니면서 시작된 선생님과의 인연이 영화의 엔딩 자막처럼 후드득 내 몸속을 훑고 지나간다.

당시(20대) 세배를 가면 선생님은 세뱃돈으로 꼭 만 원을 주셨다.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변함없이 만 원을 주셨을 때, “선생님 세뱃돈 좀 올려주세요. 물가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아세요? 강산도 몇 번씩이나 변했다고요”라고 하면, “그래 그럼 강산이 얼마나 변했는지 어디 한번 나가보자”라고 하셨다.

선생님과 달려온 한겨울 청령포는 적막했다. 한파로 고립된 단종의 유배지에는 새하얀 눈이 카펫처럼 깔렸다. 선생께서는 꽁꽁 언 얼음장 밑으로 휘돌아 나가는 서강의 물돌이를 한참이나 지켜보셨다. 간혹 당신의 지난 고립된 수감생활이 연상되시는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그러다 “저 고립이 흰 그늘이여”라고 말씀하셨다. 꽉 막힌 장소를 싫어하시는 선생께서 던지는 아이러니한 화두였다.

2002년 12월, 석사논문집 ‘김지하 서정시에 나타난 ‘그늘’의 상징’을 들고 찾아뵈었다. 졸고라 부끄러웠지만 선생께서는 당신이 만든 자생어 ‘그늘’이 논문 제목으로 선택된 것에 대해 기뻐하셨다. 그때 선생님은 처음으로 내게 난을 쳐서 선물로 주셨다. 이후에도 선생께서는 작은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난과 매화, 달마 등 적절한 글씨를 새긴 그림을 보내주셨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선생님이 주신 서화.



2006년 3월, 문화전문지 쿨투라를 창간했을 때는 당신 일처럼 무척 흥분하셨고, 나에게 새로운 ‘문화운동’을 간곡히 원하셨다. 2007년 창간 1주년 때는 ‘文化革命’이라는 글씨와 함께 매화가 그려진 휘호를 보내주셨다.

서울에 나오실 때면 미리 연락하셨다. 어느 날은 큰돈이 생겼다며 당신이 밥을 사겠다고 하셨다.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니 선생님은 혼자 들기 무거울 정도로 책을 한 아름 고르셨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싱글벙글 웃으시며 계산대에서 10만 원 수표를 내밀었지만, 책값에 턱없이 부족했다. 순간 선생님은 어린아이마냥 무슨 책을 빼야 할지 난감해하셨는데 내가 카드로 계산하자 그제야 안도하셨다. 선생께서는 사회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직시와는 달리 빠르게 변화하는 자본의 물정에는 너무나 어두웠다. 컴퓨터도 하지 않으셨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으셨다.

2017년 1월, 지하 선생께서는 나를 원주로 부르셨다. 문학평론가인 홍용희 교수와 함께 원주 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시내 카페로 갔다. 선생께서는 2014년 갑오(甲午) 12월 15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2년에 걸쳐서 쓴 친필 원고 뭉치를 내밀었다. 1권의 시집 노트와 우주생명학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매일 쓴 노트 4권이었다. 매체에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신작 시집 ‘흰 그늘’과 신작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내게 맡기며, 생전에 펴내는 ‘마지막 저서’라고 선언하셨다. “이제 그림만 그리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믿지 않았지만 2018년 7월에 출간된 두 권의 저서는 선생님의 예언처럼 마지막 책이 되고 말았다. 선생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자 유언 같은 책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저서 속 행간을 따라 읽다 보면 평생 생명과 평화의 길을 모색했던 시인의 눈부신 ‘흰 그늘’의 미학과 다시 만나게 된다. 선생님은 하늘나라에서도 그림만 그리실까?

손정순(시인·월간 쿨투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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