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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성격·질병… DNA 아닌 ‘경험’이 대물림 된 것

박세희 기자
박세희 기자
  • 입력 2023-09-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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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게티이미지뱅크



■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지음│정지인 옮김│아몬드

유전자 스위치를 끄고 켜는건
경험 인한 ‘후성유전’에 달려
생물심리학자가 과학적 증명

성장기 식사량 부족했던 남성
아들 심혈관 사망 가능성 낮고
손주는 당뇨병 사망 확률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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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일까. 왜 나는 과체중이며 성격은 소심할까. 이 같은 질문에 많은 이가 ‘유전자’를 이야기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이라는 거다. ‘타고난다’는 말은 발달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든 상관없이, 내가 가진 어떤 특징들을 정해진 운명처럼 느끼게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발달·생물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피처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무어가 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는 이를 뒤집는다. 그러면서 무어가 꺼내 든 개념은 현재 유전학,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학문인 ‘후성유전학’이다.

우선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후성유전’은 “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DNA 염기 서열을 바꾸지 않은 채, 마치 전등을 켜고 끄는 것처럼 유전자의 활동을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하는 것이다.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DNA가 얼마나 활성화하는지가 후성유전에 달려 있는 셈이다.

후성유전의 작동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로 ‘잘 놀라는 쥐들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과학자들은 한 연구를 통해 어미 쥐의 행동이 새끼 쥐의 스트레스 반응 조절을 담당하는 일부 유전자의 활동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끼를 핥아주고 털을 다듬어주는 데 많은 시간을 쏟은 어미 쥐는 그 행동으로 새끼 쥐의 특정 유전자들을 효과적으로 ‘켰고’, 이 유전자들이 켜진 결과 새끼 쥐는 스트레스가 심한 일에도 여유롭게 반응하는 성체 쥐로 자랐다.

후성유전학은 이렇게, ‘타고난 유전자가 우리의 특징이나 성격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뒤집는다. 이는 아주 큰 변화인데, 예컨대 어떤 아이가 극복할 수 없는 학습 장애를 초래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 믿는 교사는 그 아이를 가르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덜 쏟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부모가 둘 다 비만이니 자기도 뚱뚱해질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식사량을 통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책은 우리의 그 어떤 특징도 유전자 단독으로 만들어낼 수 없으며, 우리 형질은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요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아동기에 겪은 학대 경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이 됐더라도, 이후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그 증상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책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목은, 미래에 아빠가 될 사람이 무엇을 섭취하는가가 이후 자녀, 나아가 손주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경험의 대물림’인데, 이는 ‘획득된 형질은 유전될 수 없다’고 말하는 현대 생물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유전자만이 진화적 변화를 추동하며, 살아가면서 하는 경험은 자손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저자는 세대 간 경험이 대물림된다고 이야기한다. 스웨덴의 최북단 외베르칼릭스 지역 연구의 결과는 놀라운데, 특정 남성이 성장기(9∼12세)에 충분한 식량을 섭취하지 못했을 때, 미래에 그의 아들은 심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낮았다. 그의 손주들 역시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식량이 남아도는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남성의 손주들은 당뇨병 관련 원인으로 사망할 위험이 네 배나 증가했다. 후성유전의 효과가 대물림된다는 것을 증명한 예다.

저자는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후성유전학 관련 지식이 앞으로 여러 영역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한다. 암, 노화, 알츠하이머병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나 방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어는 그러나 관련 논의가 ‘후성유전적 결정론’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한다. 아기가 생애 초기에 한 경험이 영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사람의 발달은 결정론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 아니며 삶의 초기에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된다는 것은 잘못된 가정”이라고 말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조금 식상할 수 있다. 유전자가 아닌, 경험과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하지만 의미가 없진 않다. 아직 모든 게 결정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나 자신을, 자손을, 그리고 손주까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갈 기회를 아직 가지고 있다. 꽤 희망적인 결론이다. 540쪽, 2만9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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