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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정치인” 이라고 하셨지만… 당신은 그 누구보다 진솔

  • 입력 2023-09-13 09:12
  • 수정 2023-09-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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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장광근)와 함께 찍은 사진. 아버지는 늘 바쁘셨으나 마흔 넘어 얻은 늦둥이 아들인 나를 무척 아끼셨다.



■ 그립습니다 - 아버지 장광근(1954∼2023)

“벚꽃이 참 예쁘게 폈네….” 2주간 힘든 항암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아버지 눈에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빠, 내년에는 더 건강해지셔서 저랑 같이 벚꽃 보러 갈 거죠?” 내가 물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차디찬 손을 쓰다듬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그의 손을 만질 수도, 함께 벚꽃을 볼 수도 없는 지금, 못내 아쉬워 당신이 앉았던 자동차 오른쪽 뒷자리만 어루만져 본다. 항상 다른 이를 먼저 챙기며 정작 본인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바보 같던 당신은 5년 넘게 지독한 병마와 사투를 벌이다 지난 7월 29일에 꿈꾸듯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의 아버지 ‘장광근’. 그의 젊은 시절은 그야말로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대학 시절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대가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군대에 강제로 입대하였다. 대학에서 두 번의 제적도 당했으나 간신히 복학하여 34세에 뒤늦게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본격적으로 ‘한겨레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여, 아버지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이기택 총재를 따라 ‘꼬마민주당’ ‘통합민주당’에서 힘겹게 정치 생활을 이어 나갔다. 당시, 아버지는 노무현, 김부겸, 제정구, 권오을 의원 등과 함께 “재야의 정치인으로서 국가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현실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맡으며 매일 아침 논평을 내셨는데, 당시 기자들은 아버지의 논평을 ‘촌철살인’이라고 평하곤 하였다.

아버지는 지역 활동만큼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인정하는 성실한 일꾼이었다. 포용력과 친화력은 누구나 평가하는 아버지의 가장 큰 정치적 강점이었다. 하지만, ‘정치인 장광근’으로서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출마하는 선거마다 실패의 쓴맛을 봤고, 비례대표를 지낸 두 번을 합쳐 임기가 2년이 채 되지 못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아버지가 5년 전 위암 수술 후 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누나(장보미)가 빠져서 아쉽지만,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귀한 사진이다.



때때로, 가족들은 정치인이었던 고인이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술에 취해 고인에게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대뜸 다가와 시비를 걸거나 조롱하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싫은 내색 한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이야기를 마친 후 식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어린 나는 그들이 미웠고, “아빠는 왜 사람들한테 한마디 못 하고 그렇게 무시만 당해요?”라며 따지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아빠는 정치인이라 모든 사람한테 영원한 죄인이고 이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는 우호적인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닌 적대적 입장도 들으며 국가와 국민의 발전적 삶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내게 조언해 주셨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칠전팔기의 도전 끝에 18대 총선에서 처음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당신이 뜻하던 의정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지역구 의원에 당선되던 날 밤,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에 대한 미안함에 이불 속에서 홀로 눈물을 삼키셨다.

이후,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여당 사무총장 및 국토해양위원장 등 주요 요직을 맡으며 화려한 정치 인생의 불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 불씨는 그리 오래 타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그리고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억울하게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이후 정치인으로서 명예 회복을 위해 다시 한번 선거에 출마하였고, 그의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나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선거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세상은 쉽게 아버지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경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수개월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던 그날,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나를 아버지가 조용히 부르셨다. 그러고는 “병준아, 아빠는 정치인이자 가장으로서 실패한 인생을 보냈어.” “이제는 아들이 우리 집안의 기둥이 되어 아빠를 좀 기쁘게 해줘”라며 차분한 어조로 서럽게 우는 나를 달래셨다. 의연한 듯한 그도 결국 하나의 작은 인간에 불과했을까? 모두가 자는 새벽, 아버지는 불안하고 분한 마음을 깜깜한 거실에서 가족 몰래 매일 술로 추스렸다. 외로웠던 당신에게 버팀목이 되기에 나는 너무나도 어렸다.

이후, 아버지는 정치인의 삶을 벗어던지고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며 식구들과 추억을 쌓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께 반갑지 않은 친구인 암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수술을 마친 아버지의 모습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기개 넘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빠가 몸 좀 괜찮아지면 우리 같이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 가자. 그게 아빠 소원이야!”라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하지만, 암세포는 빠르게 전이되어 결국 여러 장기에 퍼졌다. 사람 만나는 것을 참 좋아했던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모임에 참석하여 지인들과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려 하셨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쉬어야 한다고 말려봤지만, 완강한 아버지의 뜻을 절대 꺾을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세상과 작별을 준비하는 아버지만의 방식이 아녔을까 싶다.

하지만, 마지막 항암 치료를 하러 가기 전, 아버지는 어머니께 “이제는 지쳤으니, 훌훌 털고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늦둥이 아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묻은 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이제는 그간의 치열한 삶은 접어두고 자유로운 밤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훗날, 나는 그의 소원대로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곳의 어느 한가운데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볼 때, 아버지가 내게로 살며시 다가온다면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아버지는 절대 실패한 정치인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이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고, 그 어떤 누구보다 참되고 진솔했던 정치인으로 기록될 거니까요.”

막내아들 장병준(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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