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 경로당 강당에서 할머니들이 랩 연습을 하고 있다.

■ 래퍼로 변신한 칠곡할매들 한가위 공연 앞두고 맹연습

평생 농사만 짓다 한글 깨쳐
자신들이 쓴 시 10편, 랩으로
6·25전쟁 등 인생 애환 담아
그룹 이름은 ‘수니와 칠공주’

칠곡=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우리가 빠지면 랩이 아니지／랩 때리는 우리／은행 가서 내 싸인도 내가 했다네／아임 해피 유어 해피 에브리바디 해피∼.”

지난 7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 경로당. 8명의 할머니가 힙합 가수들이 쓰는 것 같은 모자와 목걸이, 옷을 걸치고 프리스타일 랩을 하고 있었다. 최고령인 정두이(92) 할머니부터 최연소 장옥금(75) 할머니까지 평생 농사만 지어온 평균 나이 85세의 마을 주민들이 뒤늦게 한글을 깨친 후 래퍼로 변신했다. 지난 8월 30일 창단한 이 마을 래퍼 그룹명은 ‘수니와 칠공주’다. 리더인 박점순(82) 할머니의 이름 중 ‘순’을 표현한 ‘수니’와 7명의 맴버를 의미한다. 박 할머니는 “처음 랩을 접할 당시 도통 알아듣지 못해 외계어인 줄 알았다”며 “리듬을 타면서 가사를 부르니 한층 경쾌하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직접 쓴 자작시 중 살면서 직접 경험한 10편을 선택해 랩 가사로 만들고, 곡을 입혔다. ‘환장하지’ ‘황학골에 셋째 딸’ ‘학교 종이 댕댕댕’ ‘나는 지금 학생이다’ 등은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 6·25전쟁 당시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오해한 ‘딱꽁 딱꽁’과 북한군을 만난 느낌을 표현한 ‘빨갱이’ 등 전쟁의 아픔을 담은 시도 랩으로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발발 직전에 태어난 이들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다가 칠곡군이 농촌 지역 비문해자 해소를 위해 운영하는 성인문예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익히고, 시를 쓰며 랩까지 접하게 됐다. 정 할머니는 “한글 선생이 보여준 랩 관련 유튜브를 보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랩 도전에 나섰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은 추석 연휴에 열리는 칠곡성인문예한마당과 왜관점오골목축제에서 첫 랩 공연을 펼치기 위해 하루 2시간씩 맹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