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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인 아버지와 문학의 아버지… 두 분 모두 진정한 어른

  • 입력 2023-09-05 09:04
  • 수정 2023-09-0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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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이임철 (1932∼2022) · 조영서 (1932∼2022)

1. 이임철

“밤하늘 불꽃놀이가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기라.”

참전 용사,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전장 이야기다. 18세 외동아들이, 엄동설한에도 이불 덮지 않고 자식의 무사 귀환만 바라시던 그 부모의 아들이, 키만 한 M1 소총 질질 끌고 다녔을 촌뜨기 청년이 겪은 민족 대참사의 한 줄 요약이다.

10년 전쯤에 일월산을 뒤지던 날이 있었다. 수운(水雲) 선생이 수도(修道)하셨던 동굴을 발견했다는 제보가 있어서다. 5월의 산 중턱을 헤매고 다니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가 보니 토끼가 세수하기에, 나무꾼들이 목축이기에 적합한 자리였다. 지방 공무원의 야심 찬 희망사항이었다. 실망했지만, 습관대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고 푸념을 했다.

“거기가 너그 아부지 빨치산 토벌대 했던 곳이다. 허벅지에 총탄 맞았지. 그때는 민둥산이라, 산 위에서 철모를 엉덩이에 깔고 눈썰매 타듯 내려왔는데, 나무는 좀 있나?” 소설로만 읽고, 영화로만 봤던 ‘태백산맥’의 그 많은 주인공 중에 우리 아버지도 한 분이셨다니. 날 궂으면 호소하시던 통증의 진원지가 바로 여기였다니. 그래도 거창 쪽에 계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니는 제발 돈 되는 거 좀 해라!” “그 아부지에 그 아들인데 우짭니꺼?”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조영서(캐리커처)



2. 조영서

“행우 있나!”

눈 부리부리한 아저씨가 흰머리 반짝이며 들어오신다. 서울서 귀향하실 때마다 맨 먼저 들르시는 곳이 우리 집이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할아버지 두 분도 친하셨다. 18급 바둑 실력으로 벌였던 승부는 2차대전을 방불케 했다. 명절에 세배를 가거나, 우리 고모보다 좋았던 막내 고모를 보러 가면, 할아버지는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서울에 있는 손주 생각나서 더 그러셨을 거다.

1977년 겨울, 대전을 여행하다 서점엘 들렀다. ‘햇빛의 수사학’을 드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 시집의 표지 사진이 ‘행우 있나!’의 주인공이었다. 그때 시인은 내게 하느님보다 높았다. 초중학교 때는 우리 이름 대신 아버지들의 이름을 대신 불렀다. 그래서 친구 아버지의 함자는 거의 안다. 그러나, 그 부리부리 아저씨는 서울에 계시기에 미처 몰랐다. 그런데, 그분이 시인이셨다니. 왜 그렇게 기뻤던지. 천군만마를 만나도 그러진 않았으리라. 그날부터 아저씨는 내 문학의 아버지가 되셨다.

을지로 횟집에서 자주 뵈었다. 고향 후배인 강현덕 시인과 같이. 조선일보 계실 때부터 자주 가시던 곳이라 하셨다. 우리는 카운터 부근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주위 분들 이야기 들으니 늘 그러셨다 했다. 시를 보여주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도 같다. “어떤노?” 그 표정에 부끄럼과 긴장감이 역력하다. 당신이 지녔던 권력이면 우리 시단을 좌지우지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늘 문학청년으로 사셨던 저 무구함. 그래서 시도 참 아름답다. 입원해 계실 때, 육필 원고를 모아 ‘어떤노?’라는 제호로 묶어 드렸다. 소천 직전 나온 마지막 시집 ‘하늘 가는 걸음걸이도 높푸르다’에서도 물으신다. 어떤노?



같이 가시기에 저승길이 덜 외로우시리라. 그래서 내가 우러르는 하늘도 덜 슬프다. 두 분은 분야가 다르지만 미학자다. 한 분은 고향에서 선산 지키며, 한 분은 타향에서 명예 지키며 사셨다. 노추(老醜)와 노탐(老貪)이 만연한 시대에 진정한 어른으로 사셨다. 늦었지만, 한 번은 꼭 드려야 할 말씀이기에 올린다. “두 아버지, 당신들처럼 감사와 존경받는 어른으로 살고 싶습니다. 무척 뵙고 싶습니다.”

이형우(시인·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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