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람 적재적소 활용 이순신… 요즘으로 치면 ‘종합경영자’ 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여해재단 집무실에 걸어둔 고려 말의 학자이자 문신인 문익점 초상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기업인 문익점’이라는 책을 쓴 윤 회장은 “우리 역사 속 기업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기업인의 역사를 찾던 중 한반도에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을 기업인으로 재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재계의 ‘충무공 전문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나라가 안도와줘도 늘 준비
언제나 상생·사람 우선시해
기업인들 규제 불평만 말고
이순신처럼 극복 노력해야

독서는 문제 인지·해결 과정
읽으며 절실함·아이디어 생겨

기업인들 경마장 말과 같아
채찍 말고 사기도 올려줘야

인터뷰 = 김만용 산업부 부장 mykim@munhwa.com
정리 =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국내 대표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이자 제약사인 한국콜마를 창업, 30년 넘게 이끌고 있는 윤동한(76) 회장은 역사 속에서 길을 찾는 기업인이다. 윤 회장은 과거 기회와 위기의 순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의사 결정 과정이 역사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믿는다. 역사책이 일종의 경영 지침서이자 거울인 셈이다. 그는 재계에 이순신 장군과 무궁화 전문가, 독서가로 정평이 나 있다. 충무공 정신을 계승하고자 이순신 장군의 자(字)인 여해(汝諧)를 본떠 서울여해재단을 만들고 이사장으로서 기업인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연까지 하고 있다.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80세 현역 정걸 장군’ 등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든 인물을 조명한 저서를 직접 썼다. 최근엔 경기 여주시에 무궁화역사문화박물관을 만들었다. 지난 7월 말 서울 서초구 서울여해재단에서 윤 회장을 만났다. 8월 8일이 무궁화의 날이고, 15일은 광복절이었던 만큼 대화가 주로 역사에 집중됐다.

―어떤 계기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역사를 원래 좋아했다. 고교 시절 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만류해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역사에는 사건과 사람,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모든 일이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인접 국가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재미있었다. 한국사를 알려면 중국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사를 알려면 북방사를 알아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몽골사, 페르시아사, 로마사로 다 연결이 된다. 그런 부분이 재미있어 역사 공부를 하게 됐다. 역사는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들의 연속이다.”

―수많은 영웅 중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애정을 쏟은 이유는.

“나는 늘 직원들이나 후배들을 교육할 때 이순신 장군을 본받으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여러모로 배울 게 많다. 알수록 존경스러운 분이다.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이긴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이다. 인간 이순신에 대한 안 좋은 뒷얘기도 없다. 이순신 장군은 충과 효가 잘 합쳐진 성품을 지녔다. 또 처음엔 문과 준비를 했다가 후일 무인이 됐다. 문(文)은 사고, 무(武)는 행동이라고 봤을 때 행동과 사고가 연결된 인물이다. 자기 일에 그렇게 충실한 분이 없다. 또 부하들의 이야기를 늘 경청하고 인정했다. 전사할 때도 ‘전장이 급박하니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고 본다. 배워야 할 모델로 제시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인물이다.”

―기업인으로서 배워야 할 점이 또 있었나.

“이순신 장군은 정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척후병을 늘 전장 근처 산꼭대기에 배치했다. 승려나 농부 등 척후병 역할을 할 사람들도 수시로 고용했다. 그리고 실전을 염두에 두고 훈련에 임했다. 경남 통영에 가면 이순신 장군과 수군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한산정’이 있는데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다. 바다 위에서 활을 쏘는 수군을 고려한 것이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넓고 깊게 본 것이다. 영웅이 아니라 ‘성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한국콜마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은 어떤 영향을 미쳤나.

“회사를 경영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 이순신 장군은 요즘으로 말하면 ‘종합경영자’다.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을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나라에서 도와주는 것이 없어도 늘 준비를 했다. 경영인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임진왜란 때 전투에서 이겨도 포구에서 자지 않고 항상 바다에 나가서 주무셨다. 경영인으로서 솔선수범을 배우게 됐다.”

―그렇다면 많은 한국의 기업인들은 작은 이순신일 수 있다. 규제와 반기업 정서가 심해도 기업들이 뚫고 나가고 있다.

“기업인이라면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규제를 방어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는 법이다.”

―사업을 하면서 이순신 정신을 실천했던 사례가 있나.

“사업 초기 자금난이 찾아왔다. 미리 원료를 사서 물건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데, 자금은 물건을 납품한 뒤에야 들어온다. 그래서 ‘발주계약금’을 받기로 했다. 당시엔 오더(주문)를 주는 것만 해도 감사했는데 선금까지 달라는 게 쉽진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봤다. 1970년대 초반 은행에서 근무할 때 서울 광화문, 동대문 근처에는 양복점들이 많았다. 양복을 맞추려면 선금을 줘야 하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자금난을 넘겼다. 이순신 장군도 비슷했다. 군인과 피란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해로 통행첩’을 발급해 곡식을 거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순신 장관이 이 시대에 산다면 기업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순신 사상의 근간은 바로 ‘상생’이다.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 인간은 인사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임금한테 승전 장계를 올릴 때 부하들의 이름을 일일이 써서 올렸다. 한자 이름이 없던 천민에게도 다 한자 이름을 만들어 줬다. 늘 부하 직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정신이 대단하신 분이다.”

―‘기업인 문익점’이라는 책도 썼는데.

“과거 우리는 기업인, 즉 상인을 천박하게 여기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신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업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기업인 정신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책을 쓰게 됐다. 문익점 선생이 고려 시대 원나라에 간 이유 자체가 목화씨를 가지러 간 것이다. 당시 정몽주는 절개를 지키다 죽었고, 이색은 현실도피를 택했다. 하지만 문익점은 현실 참여를 택했다. 목화씨를 가져와 겨울철 얼어 죽는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그런 점에서 기업인으로 본 것이다.”

―독서에 대한 철학이 있나.

“독서란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는 과정이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절실함이 생기고 아이디어가 구체화한다. 나는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다. 선친이 나에게 물질적 재산은 남기시진 않았지만, 독서 습관이라는 큰 자산을 남겨주셨다. 선친이 6·25전쟁 직후 초등학교 시절 선물한 ‘15소년 표류기’라는 책은 하도 많이 읽어서 외울 정도였다. 지금도 독서는 큰 행복이다.”

―지난해엔 경기 여주에 ‘콜마 무궁화 역사문화관’까지 열었다. 무궁화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있나.

“예전엔 교실 앞에 늘 화단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 무궁화를 심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장면을 보기 어렵다. 무궁화가 법을 통해 국화로 공식적으로 지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궁화꽃은 떨어질 때 오므라들면서 단정한 모습으로 떨어진다. 무궁화를 심으면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신다는 유언비어가 있는데, 고려장과 마찬가지로 일제가 남긴 악의적인 소문이다. 산해경이라는 중국 최고(最古)의 역사서에 우리나라를 무궁화인 ‘훈화’를 많이 키우는 나라라고 했다. 국화 법제화를 위해 무궁화 역사문화관에서 서명을 받고 있고, 조금 더 모이면 민간 입법을 청원하려고 한다.”

―한국의 화장품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국 산업이 안정화하면 어느 나라든 국산품을 이용한다. 중국 화장품 산업 수준이 지금 많이 올라왔다. 중국은 한국에 지는 것을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중국 화장품 산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이제 중국과 경쟁하려고 하지 말고 그 시장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기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도 기술력이 있는 기업과 제품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즉,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우리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필요한 것을 주고, 그 시장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해야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대한민국에서 기업인과 기업이란 무엇인가.

“기업인들은 경마장에서 뛰는 말과 같다. 채찍만으론 안 된다. 기업이 필요하다는 의식을 사회가 갖고, 정부가 이를 칭찬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기업인들의 사기를 좀 올려줘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품질 경쟁이 필수다. 그래서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투자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끔 투자세액공제는 확대했으면 한다. 아직 우리나라 투자세액공제 수준은 일본에 훨씬 못 미친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기업인들은 어떤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겠다. 젊은 경영자들의 해외견학이나 교류 등을 정부가 알선해주면 좋겠다. 나도 기업인 정신을 강화할 수 있는 일, 문화사업 등을 하고 싶다. 최근 이충무공전서(이순신 장군 유고 전집) 번역서를 사비를 털어 냈다. 이런 일들도 기업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배 기업인과도 사회에 어떤 희망을 줄 것인가를 고민해보겠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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